<매일신보(1926328)><부산역사문화대전>의 서술을 실마리로 국제관의 주소가 대창정 4정목(=오늘날의 중앙동4) 40번지이며, 옛 부산역(=오늘날 무역회관)의 중앙대로 건너 맞은편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은 국제관의 주소가 부산부 안본정(岸本町) 5번지(지금의 중구 중앙동)”이라고 서술했다. 또 하나의 국제관 극장의 주소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안본정 5번지가 오늘날의 중구 중앙동이라고 보충서술함으로써 이 주소가 대창정 4정목 40번지와 어떤 관계인지의 의문을 일으켰다. 국제관이 안본정에서 개관했다가 대창정으로 이전했거나, 혹은 동리 이름이 안본정에서 대창정으로 바뀌었던 것일까?

 

국제관의 위치에 대한 엇갈린 서술들을 정리하기 위해 우선 부산역부터 조사했다. 국제관에 관한 거의 모든 신문기사가 부산역전의 국제관이라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1910년에 완공된 부산역. 왼쪽 날개 인근에 철도호텔(1912)과 공회당(1928)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사진은 1910-1911년 사이에 촬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제관의 대창정 4정목의 주소가 옛 부산역과 연관되어 서술되어 있었던 것처럼, 안본정 5번지의 주소는 부산일보사 사옥의 위치와 연관되어 있었다. 1929328일의 <매일신보>의 국제관 화재사건 기사에 따르면 이 화재로 국제관이 전소하고 인근의 이시카와(石川)정미소 창고 외에 12호를 반소하였다고 보도했다. 또 기사는 인근 부산일보사 사옥이 있어 화재가 옮겨올 것을 대비해 대피소동을 벌였다는 서술도 있다.

 

<부산일보(釜山日報)>19052월에 부산 변천정(辨天町, 현 중구 광복동 일대)에서 <조선일보>라는 제호로 창간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시사신보>로 제호를 바꾸었다가 190710월부터 <부산일보>로 개칭했다. 당시 사장은 아쿠타가와 타다시(芥川正)였고, 1915년 현재 자본금은 4만원, 소재지는 변천정 3-3번지로 기록되어 있었다.

 

<부산일보>191921일부터 개인 경영을 벗어나 자본금 25만원의 주식회사로 전환했고, 이때 안본정(岸本町, 현 중구 중앙동)에 사옥을 신축하여 19204월에 준공하였다. 1926328일의 <부산일보> 1면에 나타난 주소는 부산부 안본정 1번지로 되어 있었다.

 

1919년에 작성된 < 신정명강계입부산시가전도 ( 新町名疆界入釜山市街全圖 )>에 나타난 부산역과 부산일보사 위치. 안본정(녹색 동그라미)의 어느 곳엔가 <국제관> 극장이 설립되었는데, 이 지도가 작성될 당시에는 아직 극장이 들어서지 않았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은 국제관 주소가 부산부 안본정(岸本町) 5번지라고 했으므로 국제관과 부산일보사 사옥은 두어 집 건너 도로의 같은 쪽에 면해 있었고, 국제관에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불이 옮겨 붙을 위험에 처했던 것도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일보사 위치는 2장의 고지도에서 확인됐다. 하나는 1919년에 작성된 <신정명강계입부산시가전도(新町名疆界入釜山市街全圖)>였다. 이 지도에는 부산역이 부산정거장으로 표기되어 있고 길 건너편이 안본정(岸本町), 안본정 건너편이 중정(), 안본정과 중정의 남쪽이 대창정(大倉町)이었다. 이들은 모두 신축 매립지에 새로 만들어진 토지이며, 신매립지의 서쪽 건너편은 본정(本町) 4,5정목이었다.

 

이 지도에서 부산일보사의 사옥은 부산정거장 맞은편이었고, 아마도 부산일보사 인근의 안본정은 다른 시설물이 들어서지 않은 공터처럼 되어 있었다. 국제관 극장은 19208월에 개관했으므로, 1919년에 작성된 <싱정명 강계입 부산시가전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1930년 이후에 작성된 <대일본직업별명세도>에 나타난 부산역과 부산공회당, 부산일보사 사옥과 국제관 극장 위치로 추정되는 지역.

 

또 한 장의 지도는 <대일본직업별명세도>로 작성연대가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부산역 앞 광장에 <부산공회당>이 표시되어 있다. 부산공회당의 주소는 대창정 4정목 89-1번지이었으므로 부산역 주소인 대창정 4정목 87-7”의 바로 옆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도에는 <국제관>이 표시되지 않았다. 부산공회당 개관이 19283월이고 국제관의 화재 소실이 192912월이므로 이 지도는 1930년 이후에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지도에 국제관은 나와 있지 않지만, 적어도 부산역과 부산일보사 사옥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그 주소인 안본정 5번지는 후일 안본정이 대창정 4정목으로 개칭되고 번지수도 40번지로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 , 1929년말의 <대창정 4정목 40번지>는 그보다 10년쯤 전인 1919년의 주소 <안본정 5번지>와 같은 주소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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