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マスク, 1924)>는 이시이무용단의 부산공연(1926년 3월28일, <국제관>)에서 9번째(2부의 3번째)로 상연된 작품이다. <마스크>는 이시이 바쿠가 미국 순회공연 시기에 뉴욕에서 안무해 초연했던 작품으로, 귀국 후에도 일본에서 자주 공연되었던 독무 작품이다.
이시이 바쿠는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에 두 차례에 걸쳐서 쓰키지 소극장에서 가졌던 귀국공연에서도 <마스크>를 발표했고, 1926년 10월3일 미츠코시(三越) 백화점 옥상에서 열렸던 이시이무용단 공연 및 촬영회에서도 <마스크>를 상연했다. 또 이듬 해인 1927년 7월3일 도쿄 아사히강당(東京朝日講堂)에서 가졌던 공연에서도 이 작품을 공연한 바 있다.
이 작품은 또 이시이 바쿠의 상연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1926년 10월3일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열린 야외공연 및 촬영회 당시의 <마스크> 공연 모습이 <그로테스크>와 함께 촬영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시즈오카(静岡)현의 시마다(島田) 시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시마다시 명예시민 시미즈 신이치(故清水眞一, 1889-1986)씨가 촬영회 당일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것으로, 1986년 그가 타계하면서 다른 소장 자료와 함께 시마다 시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2014년 3월 시미즈 소장품 중에 이 영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3월21일 세타가야(世田谷) 미술관의 분관인 미야모토 사부로(宮本三郎) 기념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개최해 일본 전역의 관심을 끌었다.
그로부터 약 10개월 후인 2015년 1월 이 영상의 존재가 한국에도 알려져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는데, 이는 이 영상에 불세출의 조선무용가 최승희의 공연 모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승희의 해방 이전 공연 모습을 담은 영상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영상에 나타난 이시이 바쿠의 <마스크> 공연 모습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 이시이 바쿠는 긴 치마 형태의 의상으로 감싼 하반신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상반신, 특히 얼굴 표정과 팔 동작만으로 작품을 공연했다는 점이다. 이는 훗날 최승희의 <보살춤>을 연상시키는 공연 형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마스크>를 관람하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이시이 바쿠는 이 작품을 상연하면서 가면을 쓰지도 않고, 손에 마스크를 들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왜 제목이 <마스크>일까?
그것은 음악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음악은 알렉산드르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2-1915)의 <마스크(1912)>이다. 그의 피아노곡 <두 개의 시(2 Poèmes, Op.63, 1912)> 중의 첫 번째 곡이 <마스크>이고, 두 번째 곡이 <이상함(Étrangeté)>이다. 이 두 짧은 피아노곡은 코드 구성도 생소하고, 따라서 익숙하지 않은 화음이 이어지는데도 그 멜로디와 화음이 이상하게도 청자의 뇌리에 남는다.
스크리아빈은 이 같은 화성과 멜로디가 주는 느낌을 “특이하지만(bizarre) 달콤함이 숨어있고(avec une douceur cachée),” “미궁에 빠진 듯하면서도(enigmatique) 거짓 달콤함(avec une fausse douceur)과 일견 이상한(avec une étrangeté subite)” 느낌이라고 서술했다.
사실 스크리아빈의 음악 철학 자체에 모순된 요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의 음악은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고(visible-not visible),” “있으면서도 없는(real-not real)” 것을 표현하고 있어서, 아름다운 하모니가 추상적인 멜로디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크리아빈 음악의 매력이라고 한다.
스크리아빈의 음악에 먼저 반한 것은 야마다 코사쿠(山田耕莋)였다. 그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1914년 일본으로 돌아올 때 러시아를 경유했는데, 이때 스크리아빈의 음악을 처음 접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야마다 코사쿠는 귀국 일정을 늦추면서까지 스크리아빈의 음악을 섭렵했다. 귀국한 후에도 야마다 코사쿠는 자신의 음악에 스크리아빈의 양식을 도입했는데, 이같이 야마사 코사쿠를 통해 이시이 바쿠의 무용 안무에도 스크리아빈의 영향이 이어졌다. (*)
'조정희PD의 최승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승희의 부산공연] 5-11. 부산공연 작품 <젊은 판과 님프> (0) | 2021.12.18 |
---|---|
[최승희의 부산공연] 5-10. 부산공연 작품 <고뇌하는 그림자> (0) | 2021.12.18 |
[최승희의 부산공연] 5-8. 부산공연 작품 <솔베이지의 노래> (0) | 2021.12.15 |
[최승희의 부산공연] 5-7. 부산공연 작품 <명암(明闇)> (0) | 2021.12.14 |
[최승희의 부산공연] 5-6. 부산공연 작품 <산을 오르다> (0) | 2021.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