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시극 <젊은 판과 님프(若きパンとニンフ)>는 이시이바쿠 무용단의 부산공연(1926년 3월28일, <국제관>)에서 발표된 열한번째(2부 5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었다. 피날레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이시이 바쿠의 가장 널리 알려진 초기의 대표작의 하나이며, <이시이바쿠 팜플렛 제1집>에서는 이 작품이 1924년 도쿄에서 야마다 코사쿠(山田耕筰)의 음악을 배경으로 창작한 작품으로 서술되어 있다.
‘판(Πάν, Pan)’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목양의 신이다. 염소의 하반신과 사람의 상반신, 그리고 뿔이 돋은 머리를 가진 사람의 모습을 가졌다. 신화에서는 자주 물의 신 님프와 어울리는 장면이 나오고, 주로 판이 님프를 쫓아다니며 희롱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었다. 그래서 판과 님프는 자주 남녀간의 사랑과 섹스와 자주 연관되었다. 그리스 신화의 판은 로마 신화의 파우누스(Faunus)나 사튀르(Satyr)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그 자유분방한 성격과 행동 때문에 18세기 낭만주의 예술 사조의 상징적인 존재로 내세워졌다.
한편 님프(νύμφη, nymph)는 고대 그리스 민요에 등장하는 여성신이다. 자연이 신격화된 존재로서 인간보다는 오래 살지만 불사의 존재는 아니며, 자연이 여러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님프도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즉, 회나무 님프와 참나무 님프, 강물 님프와 바다 님프 등으로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야마다 코사쿠의 악곡 <젊은 판과 님프(1915)>과 이시이 바쿠의 무용작품 <젊은 판과 님프(1916)>은 모두 고대 그리스 신화의 판과 님프의 개념을 따르고 있다. 이는 야마다 코사쿠가 <젊은 판과 님프>를 작곡한 것은 그의 베를린 유학시절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1894)>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912년 12월 니진스키가 안무한 무대를 여러 번 관람하면서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야마다 코사쿠가 변경한 것이 있다면 드뷔시가 ‘폰(faune)’이라고 불렀던 목신이라고 한 것을 ‘판(パン)’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야마다 코사쿠가 1915년 7월에 <젊은 판과 님프>의 작곡을 마치고 악보에 제목을 썼을 때는 <젊은 켄타우로스-5개의 포엠(若きケンタウル―5つのポエム)>라고 되어 있었다. 즉, 이 곡은 5개의 소곡으로 이뤄진 모음곡이었고, 분위기면에서 드뷔시의 곡과 유사한 곡들이었다.
<젊은 켄타우로스-5개의 포엠>은 1번곡이 1분26초, 2번곡이 39초, 3번곡이 47초, 4번곡이 49초, 5번곡의 51초의 길이다. 따라서 전곡은 4분32초이므로 이시이 바쿠의 초기 무용시들보다 약간 긴 편이다. 이시이 바쿠가 5곡을 모두 사용했다면 다소 긴 작품이 되었을 것이고, 혹은 5곡 중 몇 곡만 선택해서 편곡한 음악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시이 바쿠의 <젊은 판과 님프>가 초연된 것은 1916년 9월, 도쿄 마루노우치 소재 보험협회 강당에서 열렸던 <신극장 제3회 공연>이었다는 기록도 있고, 1918년 6월8일 개명좌(開明座)에서 열렸던 <도쿄가극장공연>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초연이 이루어진 공연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더 조사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초연 당시의 제목이 <젊은 목신과 물의 요정(若い牧神と水の精)>이었으며, 이 제목이 후일 <젊은 판과 님프(若きパンとニムフ)>로 바뀐 것이 분명하며, 제목이 바뀐 뒤의 초연은 이시이 바쿠와 코나미가 세계 순회공연을 출발하기 직전인 1922년 10월5일 제국극장에서 열렸던 <석정막도구기념무용공연>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젊은 판과 님프>의 안무과정에 대해 이시이 바쿠는 그의 자서전 <나의 얼굴(1940)>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바 있었다.
“어느 날 너무 배가 고파서, 2층 선생님의 서재에 가보니, 놀랍게도 선생님은 작곡이 한창이었고, 나를 보시자 ‘여기는 아무래도 오보에를 써야겠군'이라면서 어젯밤 의논했던 <젊은 판과 님프>의 음악을 들려주셨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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