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30일 월요일, 나는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주인공을 찾는 첫 답사에 나섰다. 목적지는 경남 고성이었다. 일본 효고현의 일간지 <고베신문>과 <고베유신일보>의 1929년 3월28일의 보도에 따르면, 후쿠치야마선 개수공사에 참여했다가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사망한 윤길문, 오이근씨의 고향이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이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29일 밤11시에 서울을 출발한 고속버스는 30일 새벽 4시쯤 통영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고성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없었으므로 통영이나 진주에서 갈아타야 했다. 진주에서 환승하면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웠지만, 버스 시간표가 좋았기 때문에 통영 환승을 선택했다.
유럽 취재를 통해 터득한 한 가지 요령은, 야간에 이동하면 주간 취재시간이 넉넉해진다는 것이었다. 취재는 대부분 도서관이나 기록보관소를 방문하거나, 사람들을 탐문하는 것이므로 밤에 일할 수 없다. 따라서 야간 시간을 이동에 활용하면 시간과 경비가 확실히 절감되었다. 다만 일본 취재에서는 야간 이동의 교통편이 거의 없어서 이 요령을 활용할 수가 없었다.
고성 취재에는 자전거를 가지고 갔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는 별도의 운임 없이 자전거를 실어주게 되어 있었다. 최승희 선생의 지방공연 취재를 위해 지방 도시를 방문했을 때 자전거를 가져가서 톡톡히 덕을 보았었다. 현지 교통사정을 잘 모르는 만큼 도시 내 이동에 자주 택시를 타야했는데 자전거를 가져가면 그런 수고와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군산이나 공주 같은 중소도시에서는 시내 이동을 전적으로 자전거에 의존해도 좋았고, 대구나 광주 같은 대도시에서도 자전거가 유용했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면 되었고, 이동 거리가 멀면 자전거를 자전거보관소에 묶어놓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통영은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언덕이 너무 많았다. 새벽녘에 통영 시내 구경을 할 생각으로 바닷가 구도심으로 향했는데, 간선도로에 오르자마자 거대한 언덕이 나타났다. 도로는 캄캄하고 가로등도 드문드문한데다가 이따금씩 무서운 속도로 달려 지나가는 차량들이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오르막길은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야 했다. 내리막도 길었지만 마냥 내리 달릴 수 없었다. 도로가 고르지 않았고 무섭게 달려지나가는 트럭과 승용차들 때문에 자주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구도심에 도착하기 전에 그런 언덕이 하나가 더 있었다.
가까스로 두 번째 고개를 넘어 세병관 표지판을 지나치면서 비로소 바닷가에 접근했다. 남망산 공원에서 일출을 볼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남았으므로 한동안 선창에서 어선들이 고기 내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새벽시간에 깨어 있는 곳이 선창뿐이었다. 막 귀항한 어선들이 수백 개의 백열등을 대낮같이 밝힌 채 야간 어로에서 잡은 고기를 부리고 있었다. 한켠에서는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손가락 경매로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일출시간이 가까워지자 남망산 공원에 올랐다. 선창에서는 자전거로 불과 5분 거리였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해가 뜨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드문드문 구름이 끼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떠오르는 해가 보였다. 통영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새벽 통영의 자전거 관광은 고성 취재까지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이었고, 자전거를 타고 쏘다니는 바람에 통영 도심의 지리를 제법 익힐 수 있었다. 이것이 유용한 경험과 지식이 되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또 다른 희생자 남익삼씨의 고향이 통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통영의 사전 답사를 한 셈이었다.
남망산 공원에서 내려와 문을 연 첫 식당에서 매운탕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자전거를 시장 맞은편 자전거 주차장에 묶어둔 채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자전거로 고개를 2개나 다시 넘을 생각을 하니 아찔했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는 고성 취재를 마치고 찾으러 올 생각이었다.
고성행 시외버스는 거의 30분 간격으로 있었고, 통영에서 고성까지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성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쯤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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