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청에 들어가 우선 민원실을 찾았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창구계원에게 ‘1백년전에 일본에서 사망하신 고성면민 윤길문, 오이근씨를 찾는다’고 말했다. 계원은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함인지 미간을 찌푸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이윽고 잠깐 기다려 달라면서 전화를 했다. 일상적 민원업무 외에 다소 복잡한 민원을 다루는 담당자가 따로 있었다.
나를 안내해 민원실 한 켠에 마련된 테이블로 안내한 특별 민원담당자에게 나는 똑같이 요청했다. 윤길문, 오이근씨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자 찾아왔다고 했다. 그 역시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눈치였다. 나는 가져간 자료 폴더를 꺼내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조선인 추도비> 사진과, 제사상 장면, 그리고 나무 위패에 이름이 적힌 사진 등을 보여주었다.
“이분들이 1914년과 1929년에 일본 다카라즈카에서 철도 터널공사와 수도관 터널공사 중에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고성 출신의 윤길문, 오이근씨는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로 돌아가셨지요. 일본 분들이 1백년 가까이 이분들의 제사를 지내오셨습니다.
“작년에는 이 다섯 분을 위한 추도비를 건립하셨는데, 뒤늦게나마 이분들이 어떤 분들이셨는지 연고를 알고자 하십니다. 저는 그분들의 부탁을 받고 조사를 시작한 끝에 마침내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방법을 알려주시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민원담당관은 내 말을 다 듣고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물도 한잔 달라고 했다. 밤새 버스에서 쪽잠을 잔데다가 새벽 통영 자전거 관광으로 피곤했다. 고성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시외버스 안에서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고성군청 민원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다보니 목이 말라왔던 것이다.
내가 물과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잠시 자리를 떴던 담당자가 누군가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고성군청의 역사자료연구사 김상민 선생이었다. 나는 드디어 적임자를 만난 것을 직감했다. 그에게도 프레젠테이션을 반복했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창구나 민원담당관에게 이야기할 때보다 편한 마음이었고, 간결하게 설명해 나갈 수 있었다.
“윤길문, 오이근씨의 공적 기록, 즉 민적/호적을 열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화된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역사연구라는 이유로 열람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료가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고, 공적 자료 조사가 불가능하다면, 향교를 통한 족보 조사, 혹은 집성촌을 방문해서 탐문조사도 해 볼 생각입니다.”
김상민 연구사는 말없이 들으면서 간간이 내가 꺼내놓은 자료 사진들을 뒤적이기도 했다. 마침내 그가 일어섰다. “제 자리가 있는 2층으로 가시지요.”
2층의 절반을 차지하는 역사연구실은 책상마다 서류뭉치와 문서철들이 쌓여 있었다. 고성의 역사가 오래고 유서가 깊은데다가 문화재와 사적지 등이 많기 때문에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쪽 깊숙한 곳에 마련된 그의 책상 앞에 앉았을 때 김상민 연구사가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들기더니 말했다.
“10여년전에 강제동원 피해자 신고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신고된 사람이 고성에서만 수백 명입니다. 그중에는 강제동원 피해자도 있었고 자발적 노동이민자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신고한 경우는 별로 없고 가족이나 친척, 기타 연고자들이 신고하셨기 때문에 일단 신고서를 다 받고 분류는 나중에 했지요.
“강제동원 피해자로 확인된 분들은 중앙부서로 자료가 이전됐고, 노동이민자로 밝혀진 분들의 자료는 군청 자료실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료연한으로 폐기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자료가 남아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가지 방법이 열렸다. 나는 몇일이 걸리더라도 그 자료를 일일이 조사할 용의가 있었지만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내가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김상민 연구사가 그 신청서 조사를 자신이 해보겠다고 하셨다. 다시 희망이 솟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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