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학교의 1922년 5월 인천 수학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히 최승희가 이 수학여행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1918년에 입학해 1922년 3월에 숙명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한 최승희는 그해 4월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숙명여고보)에 진학했다.
당시 조선의 학교들 사이에는 수학여행 붐이 일었다. 1910년대까지는 조선총독부가 수학여행을 금지하거나 억제했지만, 1919년 삼일만세운동 이후에는 수학여행을 장려하되 방법과 내용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수학여행을 장려한 것은 문화정치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예산자립을 위해 관광산업을 일으키는 정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은 메이지 시대 일본 학교들의 관행을 모방한 것이지만, 대한제국 시기에 시작된 초기의 수학여행은 위국충군(爲國忠君), 즉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황제에 대한 충성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강점 후 일제가 수학여행을 억제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1919년 이후 총독부는 철도와 숙박업을 바탕으로 관광산업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자생적 산업기반이 없던 조선에서 조세 수입을 창출할 방법이 관광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강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평양과 경주와 부여를 고적지로 개발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러한 관광정책의 흐름 속에서 학생들의 수학여행도 장려되었지만, 총독부는 각 학교의 1박 이상의 수학여행은 도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한편, 여행의 경유지와 내용을 보고하도록 했다.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친일적 내용으로 채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제약과 통제에도 불구하고 조선 학교들은 수학여행을 적극 활용했다. 1920년대에 이뤄진 수학여행은 <동아일보>에 254건, <조선일보>에 171건이 보도되었는데, 중복을 제외하면 10년간 보도된 수학여행 건수는 273건에 달했다. 여기에는 보통학교(=초등학교)와 고등보통학교(=중학교), 전문학교와 실업학교 등 모든 종류의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추진했다.
이 시기에 수학여행지로 자주 선택되었던 곳은 경성, 평양, 인천, 진남포, 수원, 신의주, 원산, 경주, 부여, 강화도, 만주, 일본 등이었다. 진남포와 신의주, 원산 등은 근대 문물을 견학하기 위한 곳이었고, 경주와 부여, 강화도 등은 전통문화유적을 견학하기 위한 곳이었다.
경성과 평양, 개성과 수원과 인천 등은 일제의 근대시설/신문물과 조선의 역사유적/전통미가 공존하는 곳이었으므로 선호되었다. 1920년대에 실시된 273건의 수학여행 목적지 중에서 경성(46건)과 평양(45건)이 가장 많았고, 그 뒤로 인천(36건), 개성(28건), 진남포(17건), 수원(15건), 신의주(13건), 강화(12건)의 순서로 나타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총독부가 학무국과 각 도장관을 통해 수학여행을 통제할 때 일제가 건설한 근대문물을 강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낙후된 조선을 일제가 근대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면서 체제 우월성과 침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전통문화 유적지가 수학여행지로 선정된 경우에는 통제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일제는 삼국시대 이래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이 계속되어 왔다는, 이른바 식민사관을 주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를 유적지의 해설 형태로 학생들에게 주입했던 것이다.
일제의 수학여행 내용통제는 효과가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조선의 역사보다는 일제의 문물에 감탄하기 쉬웠을 것이고, 일제의 식민사관에 더 쉽게 물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수학여행 후에 민족의식이나 반일의식이 강화되기도 했다.
1920년 개성 수학여행을 다녀온 보성학교 황학동(黃鶴東)은 개성의 인삼실업기관을 견학한 후 일제의 식민지 경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는가 하면, 1921년 강화도 수학여행을 갔던 보성학교의 박달성(朴達成)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금일의 경우를 직접 초래한 것이 강화에 있음을 절실히 기억할 때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는가”고 개탄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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