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의 공식 생일은 19111124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조선 호적과 일본 외무성 여권발급기록 등의 공문서에는 이 날짜가 생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숙명여학교의 학적부와 북한 애국열사릉에 세워진 묘비에도 생년월일은 이 날짜이다.

 

그러나 이 생일이 최승희의 진짜 생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의문이 일었다. 이 생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최승희 자신이 직접 밝힌 나이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나의 자서전(1936)><최승희 자서전(1937)>에서 19263월 자신이 무용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가 (조선식 세는 나이로) 15세였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생일이 양력 19111124일이었다면 19263월의 세는 나이는 16세여야 했다. 또 최승희는 두 자서전에서 결혼 당시 자신의 나이는 (세는 나이로) 20세라고 밝혔지만, 공식 생일을 기준으로 하면 그의 세는 나이는 21세가 되어야 했다.

 

 

최승희의 생일과 나이의 불일치는 외국에서도 자주 발생했다. 1938111일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작성한 미국 입국서류에 최승희는 자신의 나이를 25세로 기록했지만, 공식 생일을 기준으로 하면 그의 나이는 만26세여야 했다. 19401010일 최승희가 멕시코에 입국하면서 제출한 입국신고서에도 최승희의 나이가 28세라고 적혀 있었지만, 공식 생일인 19111124일을 기준으로 하면 그의 만 나이는 29세여야 했다.

 

심지어 최승희 자신이 생년을 1911년이 아니라 1912년이라고 직접 밝힌 기록도 있다. 최승희가 1939510일자로 발급받은 벨기에 노동허가서와 19401010일자로 제출한 멕시코 입국기록에도 그의 생년이 1912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러한 공식 생일과 나이의 불일치가 해소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19111124일이라는 생일을 음력날짜로 고려하고, 이를 양력날짜인 1912112일로 변환하면 생일과 나이가 완전히 일치하게 된다.

 

당시 조선인들은 생일을 음력날짜로 기억하고 실제 생일은 양력 날짜로 환산해 축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런 관행은 1960년대나 그 이후에도 꽤 남아서 한국인들 중에는 주민등록상의 생일이 진짜 생일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 최승희도 바로 그런 경우였던 것이다.

 

최승희의 생일이 음력 19111124, 즉 양력으로 1912112일이었다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던 1938111일의 최승희 나이는 만25세가 맞다. 이날은 생일 바로 전날이었으므로 만일 미국 입국이 하루만 늦었다면 최승희는 입국기록의 나이를 26세라고 썼을 것이다.

 

19401010일 최승희가 멕시코에 입국했을 때의 나이도 1912112일을 기준으로 하면 만 28세인 것이 맞다. 이와 함께 멕시코 입국신고서에는 생년을 1912년으로 기록한 것과 브뤼셀에서 발급받은 노동허가증에 생년을 1912년으로 기입한 것도 정확한 기록이다. 다만 브뤼셀 노동허가증에 생월을 ‘5이라고 기록한 것은 1월의 잘못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최승희의 생일로 알려져 온 19111124일이 잘못된 날짜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이 공식문서에 기록된 생일이었고 최승희와 그의 가족들도 이를 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승희는 공식기록, 즉 호적과 학적부, 도항증이나 여권, 이사할 때마다 이전해야 했던 주민등록에는 모두 이 공식 생일을 기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111124일이 공식 생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짜 생일이 아니었고, 이 음력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한 1912112일이 진짜 생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최승희의 생일 파티는 이 날짜에 맞춰 이뤄졌을 것이고, 특히 가족들의 생일상도 이 날짜에 맞춰졌을 것이다.

 

최승희의 진짜 생일이 공식 생일과 다르다고 해서 그의 삶을 연구하거나, 그의 춤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탄생 기념일을 지키는 데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예컨대 최승희 탄생 1백주년 기념행사가 2011년에 이뤄졌으나, 그의 진짜 생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2012년이어야 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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