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2월7일 최승희 선생이 순천 공연을 가졌던 극장은 <순천극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이라고 한 것은 이 공연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나마 이런 추정이 가능한 것은 1930년대 순천에는 <순천극장> 외에 다른 극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순천극장>의 당시 이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극장은 1914년 일본인에 의해 <황금연예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관되었는데, 일제 토지조사부에 따르면 그 부지는 조선시대 객사 영역의 일부로 1910년대 초 읍성의 성곽을 관통하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필지가 분리된 곳이라고 한다. 지금의 주소는 중앙동 24-5번지(도로명 주소는 중앙로 16번지) 자리이다.
<황금연예관>은 1933년경 <극장 순천구락부>라고 불렸다. 1933년 1월12일의 <조선신문(5면)>에 실린 신년축하 광고에 그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광고문에는 네 사람의 일본인 극장주 이름이 병기되어 있다. 마사무네 요시토모(正宗義智), 키자키 요시오(木崎義男), 무라카미 요시카즈(村上義一), 타케우치 아키라(武內罷)가 그들이다. 이들은 <황금연예관>을 인수해 명칭을 <극장 순천구락부>라고 바꿔서 운영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0년 12월6일 벌교에서 채동선의 부친 채중현이 낙성한 벌교 최초의 근대식 극장도 <벌교구락부>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아 1930년대 초 남도에서 ‘구락부’라는 명칭이 극장 이름으로 자주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벌교구락부>가 자주 <벌교극장>으로 불리곤 했던 것처럼 <순천구락부>도 그 공식 명칭과는 별도로 <순천극장>으로 불리기도 했을 것이다.
<순천구락부>의 이름이 정식으로 <순천극장>으로 굳어진 것은 1937년 7월부터이다. 7월10일의 <동아일보(5면)>에 <순천극장>이 낙성되었다는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그해 2월 순천 거주 일본인들이 3만원의 예산으로 극장을 지어 이날 낙성식을 가졌다고 보도되었는데, 이 극장은 건평 1백50평에 2층 건물로 신축되었으므로 수용인원은 대략 7백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1943년 현재 <순천극장>의 흥행주는 <순천구락부>의 발기인 4명의 한 사람이었던 마사무네 요시토모(正宗義智)인 것으로 보아 <순천극장>은 <순천구락부> 자리에 개관되었고, 해방되기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후 <순천극장>은 일시적으로 <동춘극장>이라고 불렸다가 1950년대에 다시 <순천극장>으로 회복되었는데, 1978년부터는 <국도극장>으로 개칭되었다가 1990년대 들어 폐관되었다. 극장 건물은 오래 방치되었다가, 2009년에 철거되어 지금은 상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순천극장>의 역사를 고려하면 최승희가 공연했던 극장 이름은 <황금연예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순천극장>이라는 이름이 굳어진 것은 1937년 7월이었고, 1933년경에는 <순천구락부>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다만 <황금연예관>이 <순천구락부>로 개칭된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1931년 12월에 이미 <순천구락부>라고 불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극장이나 거리 이름에 ‘황금’이라는 말이 들어간 경우가 자주 보인다. 경성에서도 지금의 을지로를 황금통이라고 불렀고, 황금정4가에 <황금좌>라는 극장이 있었다. 이 극장은 해방 후 <국도극장>으로 불리다가 1999년 철거되어 그 자리에 호텔이 지어졌다.
1899년 4월1일부터 시제를 시행한 일본 요코하마(横浜)시는 그 최대 상업지역을 황금정이라고 불렀는데, 이 지역에는 벚나무 대신 버드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것이 특색이었다고 한다.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손님을 부르는 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 곳곳에 새로운 상업 지구를 만들면서 그 지명에 황금이라는 말을 넣곤 했던 것은 요코하마의 예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순천 최대 상업 지구였던 황금정은 지금 중앙동이라고 불리며, 해방 후에도 순천 최대의 <황금백화점>이 문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 지역은 <황금패션거리>라고 불린다. (2022/6/10,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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