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9월17일자 <동아일보(3면)>에는 최승희의 순회공연을 알리는 광고가 4개나 나란히 실렸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광고문에는 “최승희무용공개” 혹은 “최승희무용공연회”라는 말이 한자로 적혀 있었고, 그 양 옆에는 공연 일시와 극장, 주최와 후원단체 등이 명시되었다.
이 광고문들에 따르면 9월21일의 밀양 공연은 조일(朝日=아사히)극장, 9월22일의 마산 공연은 구(舊)마산의 수좌(壽座=코토부키자)에서, 9월23일의 진주 공연은 진주좌(晉州座)에서, 그리고 9월25일의 통영 공연은 봉래좌(蓬萊座)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편 그 하루 전인 9월16일자 <동아일보(3면)>에는 16일의 김천 공연이 김천(金泉)극장, 17일의 대구 공연이 대구극장에서 열린다는 기사와 광고가 실렸다. 따라서 이 시기에 진행된 최승희무용단의 경상도 순회공연은 김천(9/16)-대구(9/17)-밀양(9/21)에 이어 마산(9/22)-진주(9/23)-통영(9/25)의 순으로 진행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1931년 9월의 경상도 순회공연은 그해 9월1일 경성 단성사에서 열렸던 제4회 신작무용공연의 후속 지방공연이었고, 대구 공연 전에도 수원(9월13일)과 안성(14일)에서 먼저 공연을 가진 바 있었다. 따라서 이 순회공연은 수원-안성 등의 경기도 지역에서 출발하여 김천-대구-안동-밀양의 경상북도 내륙도시를 거쳐 마산-진주-통영의 경상남도 해안도시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9월25일 이후 신문에 다른 공연이 보도되거나 광고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통영 공연 이후 더 이상의 지방 공연 없이 경성으로 돌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9월13일부터 9월25일까지 약 2주일 남짓의 기간 동안 계속해서 순회공연을 가졌으니 피로가 누적되었을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아일보>의 이 두 광고문에 드러난 순회공연 일정에 따르면 대구와 밀양 공연 사이에 사흘의 사이가 뜬 것이 의문이었다.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가 1920년대에 이끌었던 일본 지방공연에서나, 1930년대 초에 최승희무용단이 진행했던 조선 지방공연에서도, 3-4일의 공연 뒤에 하루 쉬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연속 3일을 쉬는 것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신문들을 조사해 보니 1931년 9월14-16일의 <조선일보(7면)>에 포항 공연(9/18) 광고가 3일 동안 게재되었음이 발견되었다. 또 신문 보도나 광고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평전들이 안동 공연을 단행했다고 서술했음도 확인되었다. 따라서 1931년 9월의 경상도 순회공연은 내륙 도시인 김천(16일), 대구(17일), 포항(18일), 안동(20일), 밀양(21일)을 거쳐 해안 도시인 마산(22일), 진주(23일), 통영(25일) 공연으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진주와 통영 공연 사이에 하루의 공백이 있는데, 이듬해인 1932년 순회공연에서는 진주와 통영 사이에 사천(泗川) 공연이 끼어 있었다. 따라서 1931년 9월의 순회공연에서도 24일에 사천 공연이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9월20일부터 23일까지 4일 연속 공연한 무용단이 24일을 하루 쉬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1931년 9월의 경상도 순회공연에 사천 공연이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경상도 순회공연을 보도한 신문 기사와 광고문들을 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거의 모든 공연이 <동아일보>에만 보도되었거나 광고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시대일보> 등의 민족지들은 물론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등의 총독부 기관지, 그리고 <조신신문>과 <부신일보> 등의 일본어 신문들도 이 경상도 순회공연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는 <조선일보>가 포항 공연(9/18)을 보도하고 광고했던 것이었다.
한편 이 경상도 순회공연 직전 경성 단성사에서 열렸던 제4회 신작무용공연에 대한 모든 기사와 광고는 <조선일보>에만 실렸던 점도 눈에 띄었다. <동아일보>와 <매일신보>는 경성의 신작무용 공연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매일신보>와 <경성일보>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보도 및 광고 행태로 미루어 1931년 9월의 최승희무용단 경상도 순회공연은 <동아일보>가 단독 후원하기로 계약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1930년대 초부터 공연의 후원이 특정 언론사에 독점적으로 계약되는 것이 관행이었던 것이다. (2022/6/14,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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