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찍은 사진은 그 심미적 특징 때문에 예술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와 함께 모든 사진은 기록의 특징도 가지기 때문에 학술 자료가 될 수 있다. 사진의 기록적 특징 때문에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수백 쪽의 책들이 전달하지 못하는 사실적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떤 사진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그 사진 한 장이 담은 정보를 다 풀어내기 위해서는 수십, 혹은 수백 쪽의 책을 써야할 경우도 있다.

 

<최승희 자서전>에 실린 순천역 사진이 그런 예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십여 권에 달하는 자서전과 평전들이 서술해 놓지 않은 최승희의 순천 공연에 대한 정보를 전해 준다. 다만 그 같은 사실적 정보를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읽어 내려면 사진의 인물과 배경, 촬영시기와 출판 시기 등에 대한 배경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우선 이 사진이 순천역에서 촬영된 것임이 확실하다.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사진 자체이다. 순천역은 19301025일 전라선과 경전선의 개통과 함께 문을 열었고, 그 즈음에 순천역사를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순천역사에는 <순천역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19601231일 이후의 순천역 사진, 20091222일 이후의 순천역 사진과 함께 19301025일 순천역 개통 당시의 사진이 시기 순서대로 차례로 새겨져 있다.

 

순천역 개통 당시의 순천역 사진과 최승희의 순천역 사진을 비교하면 역사의 모양이 같음을 알 수 있다. 개통시의 순천역 사진은 역사 정면에서 촬영된 반면 최승희의 순천역 사진은 역사 측면에서 사각으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정면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두 사진 모두 배경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두 사진에 담긴 역사 모습을 비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건물 전면의 모습이 같음을 알 수 있다. , 최승희 사진의 배경이 순천역임에 틀림없다는 말이다.

 

 

또 하나의 증거는 이 사진이 <최승희 자서전>에 실리면서 순천역(順天驛)에서라는 사진설명이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진설명이 한글로만 제시되었다면 평안남도의 순천과 혼동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안남도의 순천(順川)과는 한자로 구별되는 순천(順天)으로 명시되었기 때문에 이 사진의 배경이 전라남도 순천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을 <최승희 자서전>에 실은 의도이다. 최승희의 일본어 자서전인 <나의 자서전(自敍傳, 1936)>에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실리지 않은 반면, 한국어 자서전인 <최승희 자서전(1937)>에는 34쪽에 걸쳐서 37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청색 계열의 2색도 사진이 16, 적색 2색도 사진이 8, 갈색 2색도 사진도 10쪽에 걸쳐 13장이 실려 있다.

 

37장의 사진들은 대부분 무용작품 사진이거나 홍보용으로 촬영된 사진이었고, 4장만 일상생활 중에 스냅으로, 혹은 스냅처럼 보이도록 연출 촬영된 사진들이었다. 작품 사진 중 4장은 경성에 돌아와 <최승희무용연구소>를 개설해 활동하던 시기의 사진이고 29장은 19333월 재도일한 이후의 활동을 보여주는 작품 사진 혹은 홍보용으로 촬영된 사진이었다.

 

 

일상생활을 담은 4장의 사진에는 각각 <이시이문하(石井門下) 시대>, <1회 향토방문>, <경성무용연구소 시대>, <순천역(順天驛)에서>라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이시이문하 시대><1회 향토방문>은 최승희의 도쿄 무용유학 시기(1926-1929)의 사진이고 <경성무용연구소 시대><순천역에서>는 경성에 돌아와서부터 재도일하기 전까지의 사진이다. 37장의 사진이 선택되고 수록된 데에는 나름대로 시기적 배분이 고려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이중 경성활동 시기의 사진 2장 중 <경성무용연구소 시대>는 대도시 경성에서 찍은 사진임에 틀림없고 <순천역에서>는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경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소읍에서 찍은 사진이다. , 이 두 장의 사진으로 경성활동 시절을 대표하도록 편집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순천역에서>가 전라남도 순천공연 때의 사진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을 여지는 없어 보인다. (2022/6/5,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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