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923일 최승희 무용단이 단행한 경남 진주 공연을 조사하다 보니 당시 지방순회 공연 일정은 철도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공연 동선이 철도 노선에 의해 결정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312월의 마산 공연 때문이었다.

 

27일 경성 공회당에서 신작무용발표회를 가진 최승희무용단은 지방 순회공연을 이어갔는데, 당시 신문 보도를 종합하면 217-18일 부산(공회당), 221일 춘천(공회당), 224-25일 대구(대구극장), 226-27일 마산(수좌)에서 공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순회공연 일정에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동선이었다. 경성(=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경성으로 돌아와 춘천을 다녀온 다음, 다시 경부선을 타고 대구까지 갔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최승희의 춘천 공연 연구노트에서 비교적 자세히 밝힌 바 있다.

 

 

둘째는 공연 순서였다. 왜 마산 공연을 부산 다음이 아니라 대구 다음에 했을까? 철도 때문이다. 마산까지의 직선거리는 부산에서 가깝지만, 부산에서 마산으로 직접 가는 철도가 없었기 때문에 우선 경부선 상행선을 타고 북상해서 삼랑진에서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남행해야 했다.

 

마산선(삼랑진역-마산역)은 러일전쟁을 앞둔 일제가 1905526일 군용 철도로 개통했으나, 19051111일 일반 여객과 화물 수송도 시작했고, 그해 11일 개통된 경부선(경성-부산)의 지선으로 포함되었다.

 

따라서 경부선 철도로 하행하다 보면 삼량진에서 부산으로 갈지 마산으로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최승희무용단이 서로 가깝게 위치한 부산과 마산에서 잇달아 공연하기 어려웠던 것은 바로 이러한 철도 사정 때문이었다.

 

한편 진주 공연은 순회공연이 철도에 의해 좌우됐음을 보여주는 더욱 단적인 예였다. 1931923일의 공연이 그의 첫 진주 공연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철도 사정 때문이었다. 마산선이 193141일 경남선(마산역-진주역)과 통합되면서 국철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6개월 전인 19312월의 순회공연에서 최승희는 224-25일의 대구 공연을 마친 후 삼랑진에서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마산에 도착, 226-27일 마산 수좌(壽座)에서 공연을 단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마산선이 경남선과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주까지 갈 수는 없었고, 순회공연은 마산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319월의 경상도 순회공연 때는 사정이 달라졌다. 공연 5개월 전인 193141일 경남선과 마산선 철도가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승희무용단은 마산 공연(22)을 마친 후, 다음날 아침 경남선 기차를 타고 진주에 도착, 바로 진주 공연(23)을 가질 수 있었다. , 약 반년 전에는 불가능했던 진주 공연이 가능했던 것은 마산선과 경남선이 연결된 철도 사정 덕분이었던 것이다.

 

최승희가 지방순회공연을 철도에 의지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도쿄 유학 시절 이시이바쿠 무용연구소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많은 지방순회공연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에 돌아와서도 지방순회공연을 기획할 때는 철도망과 그 시간표부터 조사했을 것이다.

 

 

이시이무용단처럼 최승희무용단이 순회공연을 철도에 의존했던 것은 무용단원과 수하물의 이동 때문이었다. 수십 명의 단원이 공연에 필요한 의상과 소도구, 조명과 음향 장치 등을 가지고 이동하는 데에 철도만큼 편리하고 빠르고 저렴한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최승희무용단은 경춘선 철도 개통 전인 1931221일 춘천공연을 가졌을 때 승합자동차(버스)를 이용했다. 당시 경성-춘천의 승합차 이동 시간은 편도 4시간이었고, 1인당 왕복요금이 약 10(편도 6)이었다. 그보다 거리가 3배나 긴 경인선 철도의 이동시간은 1시간40, 왕복요금은 약 1(편도 48)에 불과했다.

 

최승희 무용단이 지방순회공연에 철도를 이용했던 것은 이 같은 신속한 이동시간과 저렴한 비용 때문이었던 것이다. (2022/6/15,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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