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극장> 좌담회의 ‘담장(談場)’ 포스터를 비판한답시고 원고지를 10매 가량 낭비했지만, 좌담회 자체는 사뭇 중요한 행사임에 틀림없다. <나주극장>이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다고 발표된 것이 2020년 6월5일이었고, 나주시가 <나주극장>의 소유사 나주신용협동조합과 문화재생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 2021년 1월20일이었으므로, 반년이 더 지난 지금쯤 시민과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을 시기인 것이 맞다.
신문기사들에 따르면 문화재생사업은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 내 유휴공간을 찾아 특성에 맞는 문화재생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나주시는 “옛 나주극장이 가진 역사, 장소적 가치를 되살리고 ‘다시 나주극장’이라는 테마로 근대 문화·예술·생활역사를 영사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보존가치”라는 게 뭘까? 이 좌담회의 1부 강연에서는 그 점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보존 가치의 기준의 하나는 아마도 ‘오래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오래된 것은 보존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주시의 계획 중에 이 극장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린다’는 말이 포함된 것이리라.
사실 나주시 자체가 보존가치가 높은 고장이다. 1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장이 한국에서 그리 많지 않다. 한양의 역사는 6백여 년에 불과하고 부산의 역사도 2백년이 되지 못한다. 북한에는 평양과 개성이 1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시라면, 한국에서는 경주와 나주 정도일 것이다. 당연히 보존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나주극장>이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그것이 1930년대에 세워진 ‘오래된 극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오래된 역사가 제대로 구명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모사업 선정과, 업무협약 체결, 그리고 좌담회 등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 이 극장이 “1930년대에 들어선 나주 지역 최초의 극장”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맞는 말일까?
우선 언론 기사들은 <나주극장>이 “1930년대에 들어섰다”고 했지만 개관 시기를 더 특정하지는 못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1930년대는 2번의 변곡점을 갖는다. 1931년과 1937년이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대륙 침략을 시작했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이 두 시기를 기준으로 <나주극장>이 언제 설립되었는지에 따라 그 성격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나주극장>의 설립연대를 특정하지 못했다면 이 극장의 성격과 활용도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다행히 문화재생 좌담회의 주제가 “옛 나주극장의 추억 찾기”이고, 부제가 “시민들의 기억 나눔”이다. 나주시민들이 간직해 온 <나주극장>의 추억을 공유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소중한 정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주시민들의 개인적 추억을 수집해도 극장의 역사가 충분히 구명되지는 못한다. 나주극장의 역사가 90년이라면 개인들의 기억은 그 절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존한 개인들의 <나주극장> 경험은 1980년대 이후가 대부분이고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쉽지 않다. 1950년대와 그 이전의 <나주극장>의 역사는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나주극장이 1930년대에 설립되었다면 당시의 기록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까지 발굴된 <나주극장>에 대한 문헌 기록은 일제강점기의 신문기사, 그것도 중앙지의 지방판에 수록된 단신 수 건에 불과하다. <나주극장>의 90년 역사와 그 진면목을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기록이다.
기록이란 문헌뿐 아니라 사진과 영상도 포함하는데, 안타깝게도 1980년대 이전의 <나주극장> 사진이나 영상은 단 한 건도 남겨진 것이 없다. 이른바 활동‘사진’을 상영하던 최초의 근대적 문화공간이었던 <나주극장>이 단 한 장의 사진이나 단 한 편의 활동사진도 남기지 않다는 것은 역설이다.
지금부터라도 <나주극장>에 대한 기록부터 부지런히 발굴해야 한다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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