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까지만 해도 역대 나주의 극장들을 6개로 파악됐었다. <호남의 극장문화사(2007, 위경혜)>는 해방 이후 나주 지역에 <나주극장(1955)>과 <영산포극장(1958)>, <중앙극장(1963)>이 있었다고 했고, 나는 고신문을 조사해 남문정의 <마연(馬淵)극장(1931)>, <금성정(錦城町)극장(1931)>, <촌상(村上)극장(1938)>과 <나주극장(1939)>을 더 찾아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6개의 극장을 이미 찾아내어 발표한 논문이 있었다. 김남석의 <나주지역 극장의 생성과 역사적 전개에 대한 연구(2022, 160쪽)>가 그것이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보자.
“1931년 3월 나주에 방문한 김소랑 대표 삼천가극단은 방문 공연을 남문정(南門町) <마연극장>에서 시행했다(조선일보 1931년 3월8일). 1931년 7월 나주에서 시행된 영사대회 역시 금성정극장에서 시행되었다(동아일보, 1931년 7월8일). 그런가 하면 1938년에 열린 나주국방의회(羅州國防義會)는 촌상극장에서 정기총회로 개최되었다(동아일보, 1938년 8월4일). 1938년 나주 시국 강연도 이 촌상극장에서 개최된 바 있다(동아일보 1938년 10월7일). ... 1939년 나주에서는 ‘가정방호조합(家庭防護組合)’ 결성식이 나주극장에서 열렸다(조선일보, 1939년 6월28일). ... 동 시기에도 촌상극장은 여전히 존재했다. 가령 1939년 9월 나주에서 열린 신불출, 유추강, 고봉선의 만담과 야담대회는 촌상극장에서 시행되었다(동아일보, 1939년 9월3일).
‘촌상’과 ‘마연’은 둘 다 일본인의 성(姓)이다. 각각 ‘무라카미’와 ‘마부치’라고 발음한다. 이 두 극장의 설립자는 일본인이었고, 그들의 성을 따서 극장 이름을 지은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촌상극장>은 <무라카미(村上)극장>, <마연극장>은 <마부치(馬淵)극장>이라고 불러야 맞겠으나, 이 글에서는 당시의 관행대로 <촌상극장>과 <마연극장>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그런데 김남석(2022년, 157쪽)은 나주 지역에 극장이 더 있었다고 서술했다. 영산포에 <영산포극장> 말고도 <영산포 중앙극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남석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또한 나주 지역에는 영산포도 포함되는데, 영산포에는 영산포극장과 영산포중앙극장이 존재했다. 영산포극장이 더 오래된 극장이었고, 영산포중앙극장은 이와 경쟁 관계에 있는 극장이었다. 두 극장은 시차를 두고 설립되었고, 그로 인해 영산포극장은 전통과 역사성을 확보한 극장이 되었고, 영산포중앙극장은 개성과 세련미를 겸비한 극장으로 설립되었다.”
실제로 내가 <영산포극장> 터를 답사했을 때, 인터뷰에 응한 영산포 주민 한 분의 증언에 따르더라도 <영산포극장> 외에도 <영산포중앙극장>이 영산포 다리에서 홍어거리 쪽으로 50미터쯤 내려간 곳에 3층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그는 또 <영산포중앙극장>이 개관되기는 했으나 극히 짧은 기간만 영화 상영을 하다가 이내 폐업했었다고 서술했다.
이 증언은 1969년 2월28일자 <동아일보(3면)>기사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영산포에는 <영산포극장>과 함께 새로 <영산포중앙극장(1969)>도 개관했는데, 두 극장은 라이벌 관계였다. 더구나 이 기사는 1969년 2월28일에 열렸던 나주의 국회의원 재선거 과정에서 두 극장주의 대립과 갈등으로 <영산포중앙극장>의 주인이 쇼크사한 사실도 언급했는데, 대립과 갈등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보도되지 않았다.
한편, 남평 지역에도 극장이 있었다는 정찬용 선생의 증언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남평에도 극장이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따라서 <영화연감(1980)>과 위경혜(2007), 김남석(2022)의 서술, 그리고 정찬용 선생과 성명 미상의 영산포 주민의 증언을 종합하면 일제강점기 이래 나주 지역의 극장은 모두 8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는 최승희 선생의 나주공연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시작됐으나, 이내 취재의 초점이 “나주의 극장들”로 옮겨졌다. 최승희 선생이 나주에서 공연했다는 문헌 기록이나 증언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지금까지 나주 지역에 설립되었던 극장들을 조사하다보면 새로운 실마리가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이래 나주 지역에 설립되었던 극장은 총 8개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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