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삼 선생을 만난 것도 2022년 5월의 내 첫 나주 방문 때였다. 홍양현 선생의 안내로 봉황면 욱곡리 욱실마을에 있는 그의 <더욱 케어팜>을 방문했고, 그날 밤을 케어팜에서 지내면서 내가 몰랐던 나주의 농업, 의료, 사회보장 부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더욱 케어팜>의 설립자 최현삼 선생을 모두들 귀농, 즉 귀향한 농부라고 불렀다. 서울에서 역사 교사로 오래 일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으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귀향은 과거 나주 선비들의 귀향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서울을 떠나 고향에 돌아온 것은 같으나, 서울로 복귀하기 위해 칠천팔기의 기회를 노리거나 혹은 그저 안빈낙도를 꿈꾸던 과거의 선비들과는 달리 최현삼 선생은 욱실마을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일들은 한국사회가 첨단 분야로 지정해 그 발전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사업이었던 것이다.
나주 선비들의 귀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더욱 케어팜>에서 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송죽리에는 금사정(錦社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현량과 실시(1518년)와 소격서폐지(1518년) 등을 추진한 조광조(1482-1519)의 개혁이 실패하고 기묘사화(1519년)로 조광조 자신을 포함한 70여명의 선비들이 처형당한 뒤, 조광조를 따르던 나주 출신의 선비 11명이 고향으로 돌아가 안빈낙도의 한 방편으로 지은 정자라고 한다.
이 정자의 원래의 이름은 11명의 선비들이 결성한 모임 ‘금강계’를 딴 금강정(錦江亭)이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현종 6년(1665)에 재건, 고종 6년(1869)에 중수한 후 1973년에 나주시가 복원하면서, 편액이 지금의 금사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금강정이 금사정이 된 구체적 시기와 자세한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최현삼 선생의 환향은 시간적으로는 멀지만 지리적으로는 가까운 금사정의 선비 11인의 낙향과 사뭇 다르다. 금사정의 11인은 중앙정계에서 실패하고 마지못해 고향에 돌아온 것이지만, 최현삼 선생은 비교적 안정적인 서울생활을 뒤로한 채 자발적으로 귀향한 것인데, 특히 최현삼 선생이 부모님의 건강을 염려했던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했다. 나는 내심 깊은 감동을 느꼈다.
최현삼 선생은 연로해 가시는 부모님의 의료적 필요를 위해 케어팜(Care Farm)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농사일을 의료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케어팜의 개념은 일찍이 19세기초 미국의 국부로 숭앙되는 벤자민 러쉬(Benjamin Rush, 1746–1813)의 저서 <마음의 병(The Diseases of The Mind, 1812)>에서 개진된 바 있었지만, 그것이 사회운동으로 꽃이 핀 것은 20세기 후반 유럽 각국에서였고, 한국에 소개된 것은 21세기 초였던 것이어서, 최현삼 선생은 자신의 개인적, 가족적 필요를 한국사회에서 개발되는 첨단 산업부문의 관행에 접목시켜 해결할 뿐 아니라, 공동체적, 사회적 관행으로 정착시켜 나가려고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내가 최승희 선생의 전남 공연, 특히 나주 공연 여부를 조사하면서 최현삼 선생의 의견과 조언이 필요했던 것은 그의 효성이나 사업적 안목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진 역사학적 소양과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그의 절제된 소통방식 때문이었다. 이같은 그의 성향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활동가들이 보이는 ‘실천 중심’의 경향성을 균형잡는 데에 아주 긴요하게 느껴졌다.
부딪힌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연쇄적으로 구상하고 행동에 옮기느라 바쁜 최현삼 선생에게 조언과 도움을 부탁하는 것은 미안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최현삼 선생이 <더욱 케어팜> 사무실 입구 안쪽에 붙여둔 <방문객>이라는 정현종의 시 한편 때문이었다.
자기 집/사무실에 “미카사 수카사”라든가 “이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 혹은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같은 문구를 붙이는 사람은 많지만,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라는 시구를 걸어둔 사람은 최현삼 선생이 처음이다. 나는 어쩌면 그런 환대를 기대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조정희PD의 최승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주 극장] 10. 자뻑 공주님, 김순희 선생 (0) | 2022.07.19 |
---|---|
[나주 극장] 9. 나주의 8개 극장들 (0) | 2022.07.19 |
[나주 극장] 7. <나주극장>의 90년 역사 (0) | 2022.07.17 |
[나주 극장] 6. 디테일이 살아있는 기자, 정찬용 선생 (0) | 2022.07.14 |
[나주 극장] 5. 좌담회 ‘담장(談場)’ 유감 (0) | 2022.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