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719일 나주 시내의 한 찻집에서 박경중 선생님을 만나 뵙고 약 1시간 반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주 문화원장을 역임하신 박경중 선생님은 지금도 나주 문화계의 지도자급 원로이시고, 나주의 명소 남파고택의 주인이기도 하시다. 지금도 그는 나주시 금성길 13번지(지번주소, 남내동 95-7번지)”의 남파고택에 거주하신다.

 

이 저택은 1884년 남파(南坡) 박재규 선생이 초당채를 지으신 이래 1910년대에 안채와 아래채를 짓고 1930년대에 문간채와 바깥사랑채를 지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3,750평의 대지에 20동의 건물로 구성된 남파고택은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주택으로 남도지방 상류층 주택의 전형일 뿐 아니라, 각 건물들이 근대 한옥의 시기별 변천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198761나주 박경중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전남 나주 문화재(153), 20091217일에는 남파가옥이라는 명칭으로 국가 민속문화재(263)로도 지정됐다.

 

 

박경중 선생님께서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신 것은 전적으로 나주 큰언니 김순희 선생 덕분이었다. 김순희 선생은 나주시 도시재생주민자치위원회에서 활동하실 때부터 박경중 선생님을 모셨다고 했다. 인터뷰 자리에는 <케어팜 더욱>의 최현삼 선생도 동석했는데 박경중 선생님은 농사일을 노년층 돌봄과 치유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셨고 구체적인 실천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개진하실 만큼 깊은 관심을 나타내셨다.

 

나는 박경중 선생님께 (1) 최승희 나주 공연 여부와 (2) 나주의 8개 극장의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리서치의 목적이라고 말씀드렸고, 이와 관련해서 최승희 연구가 정병호 선생에 대해서, 그리고 일제강점기 문헌에서 찾아낸 나주의 4개 극장에 대해 질문을 드렸다. 박경중 선생님께서는 정병호 선생님과 직접 교분이 있으셨기 때문에 그의 생가와 최승희 연구 과정에 대한 여러 일화를 전해 주셨고, <나주극장><나주중앙극장>에 대한 사실들도 다수 말씀해 주셨다.

 

박경중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은 (1) 정병호 선생이 태어나 자란 집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하셨던 점, 그리고 (2) 정병호 선생이 어려서부터 춤과 노래에 능했고 중학교 시절 (서울에서) 최승희 무용공연을 관람한 이후 부쩍 무용에 관심을 가졌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우선 정병호 선생의 생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박경중 선생님께서 최승희 연구의 권위자이신 정병호 선생의 생가 위치를 여러 번 강조해 말씀하셨는데,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렇다면 일단 조사해 둘 필요가 있다. 박경중 선생님께서 정병호 선생의 생가가 나주성당의 길 건너 집이자 박정자 선생 댁 뒷집이었다고 하셨다.

 

박경중 선생님과의 인터뷰 다음날 이른 아침 나는 바로 나주성당을 찾아갔다. 나주성당은 지금의 나주시 박정길 3번지,’ 지번 주소로는 나주시 산정동 18-2번지에 자리 잡고 있었고, 숙소에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으므로 로시난테를 타니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박정길은 영산로에서 갈라져 북동쪽으로 뻗어나간 작은 도로인데, 두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는 <나주향토음식체험문화관(박정길 1번지, 산정동16번지)>이 자리 잡고 있고, 나주성당은 바로 그 오른쪽 옆이다. 나주성당과 향토음식체험문화관 사이에 옛날식 대문이 보존된 한식 저택이 남아 있는데, 어떤 건물인지 알려주는 표지판은 없었다.

 

 

지금은 박정길은 물론 영산로 주변 지역이 산정동에 포함되어 있지만, 1913년의 지적원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는 이 지역이 나주면 서문정(西門町)’에 속해 있었다. 나주성의 북문인 북망문(北望門)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북문정이 아니라 서문정이었다는 점이 특이했다.

 

지적원도(1913)와 카카오지도(2022)를 비교하니 박정자 선생님 자택의 일제강점기 주소는 서문정 86 혹은 87번지였을 것으로 추정되었고, 그렇다면 정병호 선생님의 생가는 서문정 87번지였을 것이 분명했다. 87번지는 후면에 국유지를 면한 대단히 큰 집이었는데, 정병호 선생의 부친이 천석꾼이었다는 박경중 선생님의 말씀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이 주소지들은 지금은 모두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