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손은 나주에서 이연년의 반란을 진압한 후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 임명됐다. 그러나 그의 공과 승진을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자주 모함을 받았다. 어떤 자가 최이(崔怡)에게 “김경손 부자가 상공(相公)을 해하려 하며 반역을 음모하고 있다”라고 참소했다가, 최이가 조사 끝에 근거 없는 모함임을 밝혀내고 참소한 자를 강물에 던져 죽였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의 추밀원은 국사책에 흔히 ‘왕명출납,’ ‘궁중 숙위와 군기‘를 담당한 기관으로 설명된다. 아직도 이런 한자어로 한국사를 가르친다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말로 하면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돕는 비서실과 경호를 맡은 경호실, 그리고 수도를 지키는 수도방위사령부를 겸한 곳이다. 즉 추밀원은 권력과 무력이 집중된 통치기구였던 것이다.
김경손의 추밀원 첫 관직인 지주사(知奏事)는 정3품의 고위 관직이었다. 그의 직전 관직은 전라도 지휘사로, 도지휘사의 지시를 받는 하급 관직이었다. 지방으로 파견되었던 하급 무관이 내관직의 지주사로 임명됐으므로 크게 승진한 것이었다. 지주사 아래로는 좌,우승선과 부승선, 당후관이 있었고, 위로는 직학사와 부사와 원사, 그리고 추밀원의 수장 판원사가 있었다.
그의 초고속 승진을 시기한 누군가가 “상공(相公)에게 반역을 꾀한다”고 참소했는데, 상공이란 최이(崔怡)를 가리킨다. 최이는 최우(崔瑀, 1166-1249)가 집권한 이후 개명한 이름이다.
1170년 정중부(鄭仲夫, 1106년-1179)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피바람과 함께 이의방(李義方, 1121-1175), 경대승(慶大升, 1154년-1183), 이의민(李義旼, ?-1196)으로 무신 권력이 이어지던 중, 1196년 최충헌(崔忠獻, 1149-1219)은 이의민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했다. 최충헌은 1219년까지 23년동안 실권을 행사했고, 아들 최우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최우는 1249년까지 30년동안 고려를 통치해, 최충헌-최우 부자는 반세기 넘도록 고려왕조를 좌우했다.
김경손은 아버지 김태서(金台瑞, ?-1257)의 장남, 즉 김경손의 큰 형 김약선(金若先)이 최이의 사위였고 고려 원종의 후비 순경태후 김씨가 그의 딸이기 때문에 왕실과 정방에서 모두 위세를 떨쳤다. 김경손이 모함을 받았을 때에도 최고권력자 최이는 자신을 죽이려했다는 심각한 모함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조사를 통해 김경손의 무죄를 밝혀주는 성의를 보였다.
최이(=최우) 집권 시기 김경손은 부친과 큰형의 후광으로 주변의 질시와 모함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1249년 최이의 서자 최항(崔沆, 1209-1257)이 집권하자 사정이 바뀌었다. 서출이자 천출이라는 핸디캡으로 불안감과 시기심이 짙었던 최항은 근거 없는 무고에도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피모함자를 살해하거나 유배 보냈다. 아버지 최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 무렵 김경손은 추밀원 부사(副使)로 승진해 있었으나, 집권 직후부터 김경손의 인망을 꺼린 최항은 그를 백령도(白翎島)로 귀양 보냈다. 그뿐 아니라 1250년에는 추밀원부사 주숙(周肅)을 살해하고, 1251년에는 자신의 계모 대씨(大氏)를 독살했다. 실권을 강화하기 위한 숙청작업이었다. 후환이 두려웠던 최항은 독살당한 대씨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살해했는데, 여기에는 대씨의 전 남편의 아들인 오승적(吳承績)도 포함되었다. 오승적은 강물에 던져져 익사했다.
최항은 김경손도 오승적과 인척 관계라 하여 그가 귀양 간 곳으로 사람을 보내 김경손에게 독주를 먹인 후 바닷물에 던져 죽였다. <고려사>에서는 “김경손은 여러 번 큰 공을 세웠으며 조정이나 민간에서 모두 그를 믿고 소중히 여겼는데 갑자기 간적(姦賊)에게 살해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애통하게 여겼다”고 기록했다.
실제로 김경손은 외적을 막고 내란을 진압하는 등 탁월한 공을 세운 고려 충신이다. 특히 김경손 장군이 정주성에서 12명의 병력으로 몽골군을 격퇴한 것은, 12척의 함선으로 왜수군을 격멸한 이순신 장군의 업적에 비겨질 만하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김경손 장군의 인지도가 높지 않고 추앙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친일파 후손과 공산주의자 후손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지독한 친일부역자 김동인-김동원 형제와 북한의 백두혈통이라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김경손 장군의 직계 후손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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