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동 선생님 인터뷰는 나주시청 문화예술과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윤지향 팀장이 손수 나서서 도움을 제공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나주극장> 문화재생사업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랬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극장 조사는 내 <최승희의 삶과 춤> 조사연구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학동 선생님께 <나주극장>에 관한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학동 선생님도 <나주극장>에 몰래 들어가다가 덜미 잡히곤 했던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내셨다. 극장주 성방명 선생은 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와서 얘기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성방명 선생의 부인과 이학동 선생님의 자당께서 가까우셨기에 베풀어진 호의였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같은 <도둑 극장>형 에피소드는 사실 매우 보편적이어서 진부할 정도다. 내용도 다들 비슷하다. “몰래 영화/쇼를 보려고 극장의 뒷담/개구멍/화장실/창문 등으로 들어가다가 붙잡혀 매를 맞거나, 손들고 무릎을 꿇거나, 부모님한테 알려져서 야단맞은 이야기. 조사연구서에서 인터넷 블로그의 포스팅까지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식상할 정도로 많다.

 

 

그에 못지않게 많은 극장의 추억이 <횡령 극장>형이다. 심부름 돈으로 영화를 보고 나중에 야단을 맞는 것이 골자다. 영화 <씨네마 천국(Cinema Paradisso)>에서 페페는 엄마한테 받은 심부름 돈으로 영화를 보고, 극장으로 쫓아온 엄마한테 귀를 잡혀 끌려간다. 5리라 지폐는 길에서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해 보지만, 그런 거짓말을 꿰뚫어보지 못할 엄마는 없다. 알프레도의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한 페페의 영화사랑은 더욱 열렬해졌고, 그는 극장의 영사기사를 거쳐 마침내 영화감독이 된다.

 

세 번째 유형의 극장 추억은 <극장 푸념>형이다. 극장을 너무 뻔질나게 드나들다가 집안일이나 공부를 게을리 했거나, 혹은 무언가 사고를 쳐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정병호 선생의 최승희 평전 서문에서도 읽었고, 벌교의 염색 장인 한광석 선생님한테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극장 푸념>형 에피소드의 결말로 등장하는 이 모양 이 꼴은 대체로 문화예술계를 가리키는 게 보통이다. 한국 교육의 특징인 추상적 암기식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는 청소년 시기에, 시청각 포함 오감을 자극하는 연극과 노래와 춤, 그리고 종합예술로서의 영화에 흠씬 빠지게 되는 것 자체가 많은 청소년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함정이다.

 

 

그래서 정병호 선생님은 무용가를 거쳐 무용학자가 되셨고, 한광석 선생님도 편집과 염색의 장인이 되셨고, 이학동 선생님도 화가가 되신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극장은 청소년들의 앞날을 예술가와 비예술가로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학동 선생님에게는 어린 시절의 짙은 추억이겠지만 듣는 이들에게는 진부할 수밖에 없는 <도둑 극장> 에피소드에 궁금한 점이 있다. 도대체 <나주극장>의 어디에 개구멍이 있었을까?

 

나는 오늘날 나주로 129번지소재 옛 <나주극장> 건물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맞은편 5층 건물에 올라가서 극장의 지붕 사진까지도 찍었고, 그 사진들을 꼼꼼히 살폈다. 이 건물의 전면은 크게 개축되었지만, 그 기본구조는 변함이 없었다. 나주로 쪽에서 바라본 건물의 양쪽 끝에 출입구가 마련된 외에는 다른 입구가 없어 보였다. 몰래 관람실로 들어갈 수 있는 담장이나 창문이나 화장실이 어디에 있었을까? 다음 번 인터뷰 때에는 그 점을 꼭 질문 드려보기로 했다. 이야기가 진부함을 벗으려면 디테일을 첨가해야 하는 법이다.

 

 

또 그렇게 개구멍을 드나들면서 이학동 선생님이 보셨던 영화나 연극, 혹은 쇼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궁금하다. 물론 그것이 어떤 영화나 쇼였는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는 있다. 볼거리가 드물었던 시절이니, <도둑 극장> 자체가 청소년들에게 흥미진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터뷰의 목적이 <나주극장>인 만큼, 이학동 선생님이 경험했던 <도둑 극장>은 어떤 것이었는지 더 구체적으로 더 알아낼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학동 선생님의 기억을 조금 더 자세히 자극해 수집해 드릴 필요가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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