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과 통영 조사를 재개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에 기록된 희생자들의 한국 내 연고를 찾는 조사이다. 비문에 따르면 남익삼(南益三)씨는 19151월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에서 진행되었던 고베수도공사에서 터널 낙반사고로 숨졌고, 윤길문(尹吉文), 오이근(吳伊根)씨는 19293월 국철 후쿠치야마(福知山)선 공사에서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202011월에 시작했던 고성 1차 조사는 3차례 단행한 현지조사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15월까지 진행된 조사에서는 고성군청의 김상민 기록연구사와 고성방송국의 한창식 대표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지만 희생자들의 연고를 확인하지 못했다.

 

고성 조사를 잠정 중단한 것은 거의 동시에 시작했던 강릉 조사가 빠르게 진척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에 기록된 희생자 김병순(金炳順)씨의 강릉 연고가 20215월에 족보 기록으로 확인되었다. 김병순씨의 족보기록을 발굴하는 데에는 경주김씨 수은공파 강릉 지회의 김자정, 김철욱 선생의 도움이 컸다. 족보에는 김병순씨의 이름과 함께 일본에 거주한다(居日本)”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202111월 중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건립한 일본인과 재일동포들에게 감사패 증정을 요청하는 청원을 강릉시에 냈다. 청원자는 일본의 정세화, 다이꼬꾸 스미애 선생님, 서울의 안해룡, 정철훈 선생, 강릉의 강승호, 홍진선, 유선기 선생 등이었다. 강릉 시의회의 정광민 의원을 비롯해, 강릉시청의 이준하, 박종시, 박인순 계장 등의 실무 담당자들이 협조해 주신 덕분에 청원은 받아들여졌다.

 

2022326일 강릉시장 명의의 감사패가 일본인 학자와 예술가, 종교인과 사회활동가 6인과 재일동포 역사가와 사업가 2인에게 전달되었다. 감사패 전달이 결정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도쿄 소재 강원도본부의 강병직 본부장과 문미현 부장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과 <강릉의 감사패> 증정은 여러 기록으로 남았다. 김병순씨의 연고를 찾는 과정과 결과는 한국과 일본의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다. 특히 강릉의 월간 잡지 <강릉플러스(20223월호)>한일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휴머니즘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보도했는데, 다카라즈카와 강릉의 시민들이 서로를 인류애와 예의로 대했던 과거 역사와 현재의 과정을 자세히 보도했다.

 

필자는 강원대학교의 평화학 학술지 <평화들(PEACES)>두 도시이야기: 강릉과 다카라즈카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강원도와 효고현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공공외교의 시각으로 정리한 것인데, 강승호 교수(강릉원주대, 국제통상학)의 강원도-연해주의 경제교류 문제를 다룬 강원도와 연해주의 농업협력 사례의 의의라는 논문과 짝을 이루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이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매년 참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동안 1914-15년의 순난자 김병순, 남익삼, 장장수씨를 1백년간 제사해 왔던 니시타니의 <만푸쿠지(滿福寺)>에서는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구역에 무궁화와 진달래를 심어 평화의 정원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한다.

 

 

감사패를 증정 받은 다카라즈카의 일본인과 재일동포 활동가들이 강릉 답방도 계획 중이라는데, 이것이 실현되면 강원도와 일본 효고현의 교류와 협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렇게 해서 강릉 출신의 순난자 김병순씨의 연고를 찾는 일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양 지역 사이에 미래지향적 전망도 열어주었다.

 

강릉 조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다른 순난자들의 연고를 찾아 나설 때가 왔다. 또 다른 희생자 장장수(張長守)씨의 연고지는 추정조차 불가능할 만큼 자료가 없었지만, 윤길문, 오이근씨의 고향은 경상남도 고성으로 조사되었고, 19151월에 사망한 남익삼씨의 연고지는 통영으로 추정되었다.

 

이제 이들의 연고지와 연고자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재개한 것이다. (2022/8/20,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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