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시립도서관의 향토자료에 수록된 조선시대 고지도 6점과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 일람표를 참고하여, 남익삼씨의 고향은 경상남도 고성군 춘원면 광삼촌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성군이었던 이 지역은 1914년 이래 통영군이 되었고, 해방후 1955년 통영군 지역을 제외한 춘원면 지역이 충무시로 승격했다가,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합쳐 통영시가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1914년 이전의 광삼촌 지역은 지금의 광도면에 속하게 되었다.

 

남익삼씨의 매장인허증에 기록된 주소 중에서 춘원면광삼촌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려졌다. ‘광삼촌()’자가 오늘날의 광도면(光道面)에 그 자취를 남긴 정도다. 그런데 오늘날의 통영시 지도에서 광도면 지역을 살펴보면 춘원면의 흔적이 더 남아 있다.

 

 

광도면 해안은 남에서 북으로 죽림리와 덕포리, 안정리와 황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과거의 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지역이 과거의 광삼면 혹은 광삼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의 안정 공단 내에 춘원1,’ ‘춘원2,’ ‘춘원3이라는 길 이름이 남아 있다. 이와 관련 통영시의 웹사이트는 춘원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안정국가산업단지 안의 도로이며, 옛 지명 춘원포(春元浦, 春原浦)에서 유래된 도로명이다. 황리(黃里) 면화산(棉花山)의 남쪽 해안에 위치하여 기후가 항시 봄날처럼 따뜻한 넓은 들이라는 뜻에서 춘원(春原)이라 칭했다가 조선 초기에 춘원(春元)으로 변천되었으며, 토박이 지명은 춘언개’, ‘추넝깨’, ‘추엉깨등으로 불리었다. 옛 춘원 포구는 최근 해안이 매립되어 안정공단으로 조성되었다.”

 

이 서술대로라면 춘원포는 황리와 안정리에 걸쳐 있었던 포구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춘원 포구를 매립해서 만들었다는 안정국가산업단지가 황리와 안정리 모두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춘원포15978월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 수군에 패배한 후 배를 버리고 도망가다가 사망한 곳이기도 했다. 춘원포의 위치는 임진왜란 저자들에 따라 황리안정리,’ 혹은 예승리등으로 주장되었는데, 지금까지는 통영시 광도면 황리였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그러나 고지도 <동여도(東輿圖, 1850년경)>에는 춘원면과 함께 춘원포가 따로 명시되었는데, 원문(轅門)의 북쪽 해안의 움푹 들어간 만 남쪽에 춘원포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춘원포가 황리가 아니라 안정리 해안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만 <동여도>와 통영시 웹사이트, 그리고 임진왜란 연구서들은 모두 춘원포가 원문 이북 해안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공통된다. 그러나 <동여도>를 제외한 다른 모든 고지도들은 춘원면을 원문(轅門)의 이남 지역, , 통제영과 미륵도, 지금의 용남면 지역이라고 했다.

 

춘원이라는 이름이 춘원포에서 유래했고, 춘원포가 지금의 안정리 해안이었다면, 여러 고지도가 원문의 이남 지역을 춘원면이라고 불렀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통제영이 옮겨간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처음 설치된 통제영(초대 통제사 이순신)은 본래 한산도에 있었다. 정유재란으로 한산의 통제영이 풍비박산이 난 후 거제도 오아포, 고성현 춘원포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1604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에 의해 지금의 통영시 지역에 정착했다. 이 지역은 원래 거제현 두룡포(頭龍浦)였지만 이내 춘원면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주요 군진이 이전할 때 지명도 함께 옮겨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거제의 조라진은 원래 오늘날의 구조라진에 있었지만 진이 옥포로 옮기면서 조라진이라는 명칭도 옮겨갔다. 또 김해시 장유면에 있던 신문진도 진해시 안골방향으로 옮겨 가자 신문진이라는 이름도 따라 갔다.

 

삼도수군통제영도 원래 안정리 해안의 춘원포에 있었으나, 통제영이 두룡포로 옮겨가면서 그것이 있었던 지명 춘원까지 따라 옮겨갔고, 그래서 지금의 통영시내 지역이 춘원면이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22/8/31,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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