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익삼씨의 매장인허증을 참고하여 그의 고향이 오늘날의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이었던 것으로 추정했고, 그중에서도 지금의 ‘안정리’와 ‘황리’ 지역, 혹은 ‘죽림리’ 지역이었을 것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이제 이 지역을 조사해서 남익삼씨가 이곳 출신이라는 문헌증거나 증언을 확보한다면 기대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남익삼씨의 연고지 확인을 위한 실제 조사에 나서기 전에 그가 다카라즈카에서 맞았던 사망사고를 정리해 두자. 우선 남익삼씨가 사망한 것은 1915년 2월20일로 추정된다. 매장인허증 발급일이 2월21일이고 매장일도 2월21일인 것을 보면 남익삼씨는 그 전날(2월20일) 사망했고, 하루 만에 신속하게 매장됐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도 개수공사에 참가했다가 사고사를 당한 막노동자를 위해 3일장이나 5일장을 치렀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고베수도공사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재일동포 역사가 정홍영(鄭鴻永, 1929-2000)이었다. 1985년 봄 다카라즈카의 조선인들을 조사하기 시작한 그는 니시타니 지역의 시사(市史) 편집을 담당했던 와카바야시 야스시(若林泰)씨로부터 3장의 매장인허증을 입수했다. 김병순, 장장수, 남익삼씨의 매장인허증이었다.
정홍영씨는 이들의 사망시기가 1914-1915년이었다는 점에 놀랐다. 일제의 조선강점이 이뤄진지 불고 4-5년밖에 안되었던 시기에 일본 다카라즈카의 깊은 산악지대인 니시타니의 타마세에서 조선인이 3명이나 사망했다는 것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일본 내무성 경보국(警保局)이 발행한 통계보고서 <조선인개황(朝鮮人概況)>에 따르면, 1915년의 일본내 조선인은 전국에 3천9백86명, 효고현에 2백18명뿐이었다. 이는 공식통계니까 실제로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도항한 조선인은 더 많았겠지만, 오사카나 고베, 도쿄 등의 대도시가 아니라 효고현의 오지 니시타니에서 조선인이 3명이나 사망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후 정홍영은 약 2년간의 조사를 통해 조선인 노동자들이 참가했던 공사가 고베수도공사였으며, 이들이 도수관의 터널 굴착공사에서 사고를 당했던 사실도 밝혀냈다.
고베에 수도가 처음 개통된 것은 1905년이었다. 요코하마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무역항이었던 고베에는 수도 문제가 심각했다. 날로 늘어나는 시민들뿐 아니라 고베항에 입항하는 선박에 양질의 물을 공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1890년에는 고베에 콜레라가 번져서 1천여명이 사망했는데, 그 원인의 하나가 용수 미비였다.
이에 고베시는 수도 건설에 나섰는데, 1893년 고베 시의회가 수도 건설계획을 승인했지만, 청일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1897년에야 공사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고베에 수돗물 급수가 시작한 것은 1905년이었다.
고베 수도가 개통되기는 했으나 고베시 인구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증가했다. 수도공사 착공 당시(1893년) 19만 명이던 인구가 완공 시(1905년)에는 32만 명으로 불어났고, 인구 증가세는 여전히 가파랐다. 고베 수도공사 계획 당시 급수 인구 목표가 25만 명이었는데, 완공 시에 이미 인구가 목표치를 넘어버렸기 때문에, 고베수도의 확장 공사가 불가피해졌다.
고베 시정부는 무코가와(武庫川) 상류의 센가리(千刈)를 새로운 수원으로 결정, 두 차례에 걸쳐 확장공사를 단행했다. 일본어 문헌에는 이를 개수(改修)공사라고 서술했지만, 수원을 늘리고 도수로(導水路)를 새로 가설하는 등의 대대적인 확장 공사였다.
제1차 확장공사는 1914년에 시작되어 1921년에 완공되었고, 제2차 확장공사는 1926년에 착공하여 1931년에 완성되었는데, 인구 80만 명의 고베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였다.
정홍영은 매장인허증에 나타난 김병순(1914년 1월3일), 남익삼(1915년 1월21일), 장장수(1915년 3월24일)씨의 매장일과 고베수도공사의 진척 일정을 비교하여, 3인의 조선인 노동자가 참가했던 고베수도공사는 1914년부터 시작된 고베수도 제1차 개수공사(1914-1921년)였던 것으로 단정할 수 있었다. (2022/9/2,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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