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연구가 무용신 캠페인의 계기가 되었다면, 타마세 부녀회와 만푸쿠지의 무연고 제사가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조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4-15년 고베수도공사 중에 사고로 사망한 3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위패가 타마세의 불교사찰 만푸쿠지에 모셔졌고 타마세 부녀회가 이들을 1백년 넘게 제사해 오셨던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다카라즈카는 일본의 중서부, 즉 간사이에 위치한 특례시입니다. 간사이는 간토 수도권에 이어 일본 제2의 인구와 산업의 밀집지역인데, 오사카와 교토, 고베 등의 대도시가 여기에 속합니다. 이 지역은 세 도시 이름의 한 글자씩 따서 케이한신(京阪神)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사카는 나니와(4세기)궁 이후 나라 천도(710)까지 일본의 수도였고 지금은 인구 280만으로 도쿄(23구의 925)에 이은 일본 제2의 대도시이고, 교토(인구 140만명)는 나라시대 이후 메이지유신 전까지 1천년 넘게 일본의 수도(794-1869)였습니다.

 

중국 견당사 파견 항구이자 1868년 개항 때에 일본의 5대 무역항(나가사키, 고베, 요코하마, 니키타, 하코다테)의 하나로 지정되어 외래문물 유입의 통로가 되었던 고베(인구 150)1180년 약 5개월동안 일본의 수도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간사이 혹은 케이한신 지역을 깅키(近畿)지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사카와 고베는 자연 지형으로는 경계 구분이 어려울 만큼 맞붙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묶어서 한신(阪神)지역이라고 부릅니다. 고베시와 오사카시 사이에는 남쪽 해안지역에 니시노미아시와 아마가사키시, 북쪽 산간지역에 토요나카시와 다카라즈카시가 있습니다. 니시노미야 북쪽의 다카라즈카는 고베와 오사카와 더불어 정삼각형을 이룹니다. 일본에서는 인구가 20만명 이상이면 특례시 신청이 가능한데, 다카라즈카시는 인구 22만명으로 2003년에 특례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카라즈카라고 하면 다카라즈카역 근처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다카라즈카시는 그보다 훨씬 넓습니다. 남북으로 약 20킬로미터쯤 길게 분포한 지역으로, 남부의 도심지역과 중부와 북부의 산간지역으로 구분됩니다. 전체 면적이 102제곱킬로미터로 한국의 강원도 속초시(106제곱킬로미터)와 크기가 비슷합니다.

 

 

다카라즈카는 세 가지 명물 덕분에 유명한 곳입니다. 온천과 가극단, 그리고 데즈카 오사무입니다. 다카라즈카 온천은 일찍이 1223년에 <고바야시노유(小林)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1887년 상업 온천이 개업해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온천은 다카라즈카 개발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온천 관광객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려고 1910년 한큐전철이 가설됐고, 관광객들에게 여흥을 제공하기 위해 1914년 걸그룹 쇼비지니스가 시작됐습니다.

 

19137월 한큐 전철의 사장 코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 1873-1957)가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을 창립, 이듬해 41일 첫 공연을 열었습니다. 오늘날의 걸그룹의 원형으로 파리 물랭루즈의 캉캉 가무단과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모방한 가극단입니다. 첫 공연 출연자는 16명이었지만, 지금은 6개 조의 연기자만 4백여명, 프로듀서와 각본, 연출, 음악과 의상, 무대미술과 오케스트라, 기타 스텝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9백여명에 이릅니다.

 

 

데즈카 오사무(手塚 治虫, 1928-1989)는 일본의 패전과 함께 맥이 끊긴 일본 만화계를 되살린 사람입니다. 오사카부 토요나카시에서 출생한 데즈카 오사무는 5(1933)에 다카라즈카로 이사, 1951년 도쿄로 이주할 때까지 그곳에 살면서 오사카대학에서 의사 수업을 받는 동안 만화가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4-50년대의 만화, 60년대의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을 열광시킨 인물로, <우주소년 아톰><흰 사자 레오>, <사파이어 왕자> 등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4년 다카라즈카에 데즈카 오사무를 기리는 만화 박물관이 세워졌습니다.

 

온천과 걸그룹 가극단, 그리고 만화영화의 탄생지인 다카라즈카는 일본의 디즈니랜드로 불리면서 일찍이 국민 휴양지로 자리 잡았던 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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