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글에서 해방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국어(조선어)강습소가 효고현 히메지의 아가미야 국어강습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최초의 국어강습소가 도쿄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재일조선인 잡지 <이어(イオ)>의 연재물 초창기의 우리학교(まりのウリハッキョ)”의 서술을 재확인했습니다. <이어> 20151월호에는 도쿄의 아다치 국어강습소가 1945913일에 개설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도쿄 유수의 동포 집단거주 지역인 아다치(足立)에서는 해방 직후인 19459월에 현재의 조선학교의 원형이 된 <국어강습소>가 탄생했다. <아다치(足立)를 통해 본 재일코리안 형성사> (강철, 웅산각) 에 의하면, 우메다쵸(梅田町), 현재의 니시아라이사카에쵸(西新井栄町)에 있던 동아공업주식회사의 공장 일부를 빌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시작되었다. ... 도쿄제4초중급학교의 연혁사에는 국어강습소가 개설된 913일을 창립기념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어> 20169월호에는 도쿄 아다치 국어강습소보다 일주일 앞선 194596, 효고현 히메지시 아가미야(英賀宮) 국어강습소가 수업을 시작했다고 서술했다. 이 날짜의 출처는 총련 히메지 서지부 동포연혁사 <세이방편(201311월 발행)>”이었습니다.

 

총련 히메지 서지부 동포연혁사 세이방(西播)(201311월 발행)에 따르면 194596, 아가미야(英賀宮) 앞에 살고 있던 어느 동포가 자택에서 아동 16명을 모아 국어강습소를 개설했다. 이것이 이 지역에 있어 민족교육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국어강습소가 도쿄에서 시작되었다는 반론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반론자가 문헌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허튼 말씀을 하시는 분은 아니었기에, 그 근거를 내가 직접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오사카경제법과대학논집(114, 20193)>에 실린 논문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의 변천과 현상(在日同胞民族教育変遷現状, 2019, 朴永炅竹中優子, 4)”에 그 내용이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459월에는 도쿄 칸다(神田)에 조선YMCA 국어강습회, 같은 해 10월에는 도츠카(戶塚) 한글학원(ハングル)을 시작으로 하여 국어강습소(당시의 국어는 조선어를 가리킨다.)가 일본 전국에 설립되었다.”

 

저자들은 도쿄 칸다의 조선YMCA 국어강습회(19459)과 신주쿠(新宿)의 도츠카 한글학원이 재일 국어강습소의 효시라고 서술했지만, 문헌출처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사한 서술을 담은 문헌을 하나 더 찾았습니다. 학술지 <아시아지역문화연구(20153)>에 실린 논문 재일조선인작가 김달수와 해방이라는 제목의 논문이었습니다.

 

조선어를 되찾는 재일교포의 활동은 패전 직후부터 이루어졌다. 19459월에는 간다 조선YMCA에서 국어 강습회가 시작되어, 10월에 도즈카 한글 학원등이 만들어졌다(37).”

 

 

이 서술에 달린 주37에는 오자와 유사쿠(小沢有作, 1932-2001)<재일조선인교육론역사편, 1973)>이 근거로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오자와 유사쿠의 저서를 찾아보니 거기에도 칸다 조선YMCA 국어강습회 개설 일자가 “19459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의 서술로는 조선YMCA 국어강습회(19459)가 히메지의 아가미야 국어강습소(194596)나 도쿄 아다치 국어강습소(913)보다 더 앞섰다고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몇 달이나 며칠 앞섰거나 뒤쳐졌다고 해서 각 국어강습소가 더 빛이 나거나 바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떤 국어강습소가 가장 먼저 개설되었는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일 뿐이지요.

 

히메지 아가미야 국어강습소와 도쿄 아다치 국어강습소, 칸다의 조선YMCA 국어강습회와 신주쿠의 도츠카 한글학원은 대개 오늘날의 재일조선학교의 전신으로, 재일 조선인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던 소중한 초기 교육기관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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