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무용신] 일본방문단이 숙박하는 이쿠노의 <파이브 호텔>은 코리아타운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쿠노라는 이름은 1973년 이후 행정동명 개편 이후에 생긴 것이고 그 이전에는 이카이노라고 불렸던 곳이지요.

 

이카이노가 재일조선인 밀집 거주지역이었으므로 당연히 해방 직후 국어강습소가 생겼고, 이어서 조련초등학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는 방문단 숙소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3백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어> 20158월호에 따르면 오사카조선4초급학교의 전신은 1946611일에 설립된 <이쿠노 제10우리학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용어대로 한다면 <조련 이카이노 제10초등학원>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설립당시 교사가 따로 없이 재일동포 현봉조씨의 공장에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카이노 제10초등학원의 개교 당시 학생은 120, 교원이 8명이었다고 합니다.

 

학생 수가 증가하자 창립 1주년을 맞은 1947611, 오사카조선4초의 현재 자리에 646평의 부지에 목조건물 교사를 신축했습니다. 이때 학생 수는 150, 교원이 9명이었습니다. 교사 신축과 함께 학교 이름을 <미유키모리 조선소학교>로 바꿨습니다.

 

미유키모리(御幸森)는 닌토쿠(仁德, 257?-399)천황이 이곳에 자주 행차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지금의 코리아타운과 바로 인접한 곳인데, 그래서 코리아타운 한 가운데에 미유키도리주오(御行通中央)문이 세워져 있고, 백제문(百濟門)에도 그 말이 쓰여 있습니다.

 

 

당시 천황의 왕궁은 난바(難波)에 있었고, 미유키모리까지는 동쪽으로 3킬로미터 남짓이었습니다. 오늘날 전철역으로도 겨우 3정거장(난바-니뽄바시-타니마치9초메-쓰루하시)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닌토쿠 천황이 자주 미유키모리에 행차를 했던 까닭은 도래인들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당시 도래인(=백제인)들은 일본 돼지()와는 다른 한반도 돼지()를 들여와서 사육에 성공함으로써 일본인들의 식생활 개선에 기여했습니다.

 

그밖에도 이카이노는 한반도와 뱃길 교류가 계속되면서 신문물이 풍성했던 곳이었기에 천황도 이들을 자주 만나보려고 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이름도 쿠다라노(百濟野) 혹은 이카이노(猪飼野)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당시만 해도 도래인들은 천황과 직접 자주 교류할 만큼 서로 존중받는 사이였던 것입니다.

 

 

해방후 이곳에 세워진 최초의 초등학원을 <미유키모리 조선소학교>라고 부르고, 1993년 이후 이곳이 코리아타운으로 개발되자 <미유키도리주오>문을 세우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도, 아마도 그같은 고대사를 반영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국어강습소가 조련초등학원으로 속속 개편되었던 1946년경, 츠루하시와 모모타니, 카츠야마와 나카가와니시 등을 포함했던 이 학구에는 <조련이카이노제10> 말고도 <조련이카이노제1(츠루하시)><조련이카이노제9(카츠야마)>가 더 있었습니다. 이중 1초와 9초는 1947년에 통합되어 <츠루하시조선초등학원>이 되었지만 <미유키모리 조선소학교>는 그대로 존속되었습니다.

 

 

<미유키모리 조선소학교>19484월부터 시작된 일본 당국의 조선학교 폐지령으로 일시 폐쇄되었다가 19544월 학생 수 2백명이 모여 같은 이름의 학교가 재건되었고, 1961년에는 <히가시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로 개칭되었다가, 1991년에 지금의 명칭인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조련이카이노제10(1946)>에서 시작되어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1991)>에 이르도록 역사적 명맥을 이어온 이 학교는 2016611일 창립 70주년을 맞았으나, 2022학년도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인근 <이쿠노조선초급학교>와 합병하게 된다는 소식입니다. 폐교의 원인은 학생수 감소과 그에 동반된 재정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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