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일본 각지에 국어강습소와 초등학원이 세워질 때 이카이노에도 많은 국어강습소가 설립됐고, 조련은 이를 10개의 초등학원으로 통폐합했습니다. 이카이노의 서부와 북부에 조련이쿠노제1, 9, 10우리학교가 설립되어, 이중 제10우리학교가 오늘날의 오사카 제4조선초급학교로 이어져 온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정리했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이카이노의 동부와 남부지역에서도 국어강습소와 초등학원들이 설립됐습니다. 19451017일 이카이노히가시9초메(猪飼野東9丁目, 지금의 타지마1초메 부근)에 세워진 국어강습소는 후일 히가시오사카 조선제5초급학교가 되었습니다. 113일에는 나카가와치군(中河内郡, 1955년에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편입) 다츠미마치(巽町)의 다츠미국민학교 안에 국어강습소가 부설됐는데, 이는 히가시오사카 조선제3초급학교의 전신입니다.

 

 

1946년에는 조련 히가시나카가와 조선소학교가 설립되었고, 이는 후일 히가시오사카제1초급학교로 이어졌습니다. 이 학교들은 1948년의 조선학교 폐교령으로 모두 일시 문을 닫았다가 1952년과 1953년에 모두 재건됐습니다.

 

1953년에는 샤리지(舎利寺)조선초급학교, 1957년에는 타지마조선초급학교가 재건되었습니다. 1956년 샤리지 조선초급학교의 교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1957년 샤리지초는 신설 타지마초와 통합되었고, 1962721일에는 이쿠노구 다츠미니시(巽西)에 신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면서 히가시오사카 조선제5초급학교가 되었습니다.

 

 

1991년 히가시오사카 제1, 3, 5초급학교가 통합되어 이쿠노조선초급학교가 되었고, 1992831일 오늘날의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이쿠노조선초급학교는 앞글에서 본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에서 남동쪽으로 약 2킬로미터 떨어져 있어서 걸어서도 30분 거리입니다.

 

한편, 해방 후 오사카시 히가시나리(東成) 지역에도 4개의 조선소학교가 탄생했습니다. 19481204개의 조선소학교가 통폐합되어, 조련히가시나리학원의 초급부와 중학부가 되었습니다. 교사는 시유지인 반도우(阪東)초등학교 부지에 신설됐는데, 이 교사는 후일 니시이마자토중학교(1950-1961)와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1961-2021)의 교사로 활용됐습니다.

 

1948년의 4.24교육투쟁을 거쳐, 194931일 오사카부는 신설된 재단법인 오사카 조련학원을 승인하고 오사카부 산하 조선학교 24개교를 사립학교로 인가했습니다. 당시 히가시나리학원에는 850명의 학생들이 재학했으나, 98일 조선학교 폐쇄령으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1년만인 19503, 폐쇄령에 저항하던 조선인 미취학학생들을 위해 오사카시가 시립중학교를 신설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선학교 재건의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그해 71일 오사카시립 혼조(本庄)중학교의 분교로서 니시이마자토(西今里)중학교가 개설됐는데, 이 학교는 조련히가시나리학원의 부지와 교사를 그대로 사용했고, 교육내용도 민족교육이었습니다. 이 학교는 한자 간판과 함께 한국식 발음으로 <서금리중학교>라는 현판도 걸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이 시작되자 <서금리중학교>의 학생수는 크게 증가해 19591천명이 넘어섰고(1,163), 1961년에는 2천명이 넘었습니다(2,059). 교실이 부족해 운동장에 조립식 교실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서금리중학교는 일본 교육제도와 교육내용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시립학교 자격을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196181일 재단법인 오사카조선학원을 설립하고 831일 시립니시이마자토중학교를 폐교, 학생들은 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오늘날 오사카조선초중급학교의 전신)196191일 신설된 나카오사카조선초중급학교로 전학했습니다.

 

나카오사카조선초중급학교는 1961910일 초급부와 중급부를 분리해 40년 이상 운영되었으나, 1980년대말 이후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2006년 중급부가 폐지된 후,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로 개칭되었다가, 2021년에는 이쿠노조선초급학교와 통합되면서 폐교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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