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커피점은 1555년경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오늘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개업한 카흐베하네(kahvehane=cofee house)이었다고 합니다. 유럽 초기 커피점은 1645년에 이탈리아, 1652년의 영국의 옥스퍼드 커피하우스였고, 미국 최초의 커피점은 1676년 보스턴에 개업한 런던 커피하우스(London Coffee House)라고 합니다.

 

 

일본 최초의 커피점은 가히사칸(可否茶館, 1888-1892) 혹은 호코도(放香堂, 1874-?)인 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지만, 자연스럽게 한국 최초의 커피점은 무엇이었으며, 언제 어디에서 문을 열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리서치를 시도했습니다.

 

한동안 1923년 경성 본정 3정목(=서울 충무로3)에 개점한 <후타미(二見)>경성 다방의 원조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잡지 <청색지> 19385월호에 실린 경성다방 성쇠기의 저자 노다객이 그렇게 서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후타미>의 개업은 1923년이 아니라 1926822이었고, 그보다 9년 전인 1917년 경성 본정 2정목 90번지에 <다리야>라는 끽다점도 개업된 바 있었습니다.

 

 

1909113일의 <황성신문>에 따르면 1909111<남대문 정거장 끽다점>이 개업했습니다. <남대문 정거장 끽다점(1909-1922)>은 이후 <경성역 그릴 및 끽다점(1925-1945)>으로 바뀌었다가, 해방 후에는 <서울역 그릴>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영업을 계속합니다.

 

<남대문 정거장 끽다점>191992일 강우규姜宇奎, 1855-1920) 의사가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1858-1936)를 암살하기 위해 대기하던 곳입니다. 그런데 19091026일 안중근 의사가 히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고 하얼빈역에서 대기하던 곳도 역내 끽다점이었습니다. 그때 강우큐 의사가 경성역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안중근 의사는 거사 직전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고 재판기록에 나와 있더군요.

 

 

그런데 1899831일의 <독립신문(영문판)>에는 1899<홍릉 요리점 끽다부>가 개업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숙박 및 식사와 함께 커피를 판매하던 곳으로 <손탁호텔(1902)도 있었고, 이미 15년 전 제물포에 개업한 <대불호텔(1887)>도 끽다점을 겸한 호텔이었습니다.

 

숙박이나 식당을 겸업하지 않은 순끽다점만 따진다면 <후타미(1926)>을 경성 다방의 효시로 본 <청색지> 기사가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후타미>는 일본인이 개점한 것입니다.

 

명동백작 이봉구는 잡지 <세대(19644월호)>에 기고한 카카듀에서 엘리제까지라는 글에서 우리사람 손으로 우리들이 사는 곳에 처음으로 문을 연 다방은 1927년 봄 서울 종로구 관훈동 초입 3층 벽돌집 아래층에 영화감독 이경손씨가 하와이에선가 온 묘령여인과 더불어 경영하던 <카카듀>”라고 서술했습니다.

 

 

그러나 <카카듀>의 개업은 1927년이 아니라 192891일이었습니다. 그해 95일의 <동아일보(3)시내 관훈동에 새로난 끽다점 <카카듀>”라는 기사가 났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조사해 보니 종합 문예지 <개벽> 19265월호에 실린 경성잡화(京城雜話)”라는 기고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성용(李星鎔), 이관용(李灌鎔) 양 박사와 기독교 청년학관의 독일어 교사 낭승익(浪承翼)군은 남대문통 소광교 부근에 경성 초유의 <백림관(伯林館)>이라는 독일식 다점을 열고 영업을 개시하였다 한다.”

 

경성 초유의 독일식 다점 <백림관(19265)>은 영화감독 이경손이 개업했던 <카카듀(19289)>보다 2, 일본인 요시카와(吉川)<후타미(19268)>보다 석 달 앞서 개업한 조선 최초의 순끽다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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