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국립대학교에서 사회학,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범죄학을 공부한 연구자입니다. 20년간 미국 대학에서 근무한 후에 한국에 돌아와, 2017년부터 독립연구자로 조선무용가 최승희 선생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 분야를 범죄에서 예술로 바꾸니 행복했습니다.
2017년 여름, 최승희 선생의 유럽공연들을 조사하면서 그분의 춤과 삶에 매료되었습니다. 유럽 취재기 집필을 마치고, 곧바로 미국과 일본 공연을 조사했습니다. 미국 공연은 많지 않았으므로 금방 끝낼 수 있었지만, 최승희 선생의 일본 공연 조사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본은 최승희 선생의 주요 무대였고 활동 기간도 가장 길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조사는 2018년 여름부터 시작됐습니다. 저는 홋카이도 나요로에서 오키나와의 나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42개 도시를 방문해 최승희 선생의 공연을 조사했습니다. 약 3년 동안 수집된 신문잡지의 기사가 수백 건, 촬영된 도시와 극장의 사진들이 수천 장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자료를 수집했지만 저는 여전히 최승희 선생의 춤사위를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무용 자료는 글과 사진이었고 영상 자료는 한 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해방된 후 북한으로 간 최승희 선생의 영상 자료는 더러 있었지만, 1930년대에 풍미했던 그의 대표작품들은 영상으로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최승희 조선무용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발동작과 어깨동작을 자세히 보여주는 영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일본과 유럽과 미국 공연의 평론기사들을 읽으면서 이따금씩 나오는 춤 동작에 대한 서술을 통해 최승희 선생의 무용 자태를 상상해 볼 뿐이었습니다.
2019년 10월, 저는 교토와 오사카, 고베와 오카야마를 다니면서 최승희 선생의 간사이 공연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교토 조사 중에 우연히 조선학교를 방문했고, 거기에서 조명호 교장선생님과 윤경숙 무용교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10월31일부터 11월2일까지 오사카에서 <재일조선학생 중앙예술경연대회>가 열리며, 그 경연대회 중에 무용경연대회도 포함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한 달 후에 저는 다시 오사카에 갔고, 오사카조선고급학교 강당에서 열린 무용경연대회를 3일 동안 내내 참관했습니다. 그것은 제 연구에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조선무용의 춤사위를 실제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춤동작이 그동안 내가 연구해 오던 최승희 선생의 춤사위임에 틀림없다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연구목적을 위해서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습니다만, 지금 돌아보면 그 대부분은 유용하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는 법인데, 당시에 저는 조선무용의 실제를 잘 몰랐습니다. 쓸모 있는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학생들의 경연대회를 통해서 최승희 선생의 춤에 대한 귀중한 실마리를 얻은 것은 분명했습니다.
이 무용경연대회에서 저는 또 하나의 운명적인 인연을 만났습니다. 정세화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경연대회의 첫날인 2019년 10월31일이었습니다. 천성적으로 사교성이 좋으신 정세화 선생님이 말씀을 걸어오셨고, 저는 왜 이 경연대회를 참관하고 있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고, 우리의 만남은 공조와 협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재일동포 사회를 잘 아시는 정세화 선생님으로부터 조선학교와 조선무용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그 정보는 그동안 중구난방으로 쌓여있기만 했던 나의 자료에 질서와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최승희의 조선무용 연구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저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부지런히 글을 써 나갔습니다.
그날 정세화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저는 처음으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가 건립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씀인지도 몰랐고, 조선무용에 푹 빠진 저에게 그런 말씀을 왜 하셨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신 그 말씀이 4년 뒤인 오늘 제가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에 대한 이 글을 쓰게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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