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에 새겨진 기록을 꼼꼼히 읽은 후에, 정홍영 선생님의 <가극의 거리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를 읽었습니다. 제1부 제1장은 고베수도공사에 대한 조사 보고서였고, 2장에는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가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이 연구보고서는 덧붙일 것이 없을 만큼 철저하고 완벽했기 때문에 저는 좋은 배경지식을 얻었습니다.
이어서 콘도 도미오 선생님이 전해 주신 <무쿠게통신>의 글들도 찬찬히 읽었습니다. 정홍영 선생님의 행적과 함께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글을 쓰신 히다 유이치 선생님과 호리우치 미노루 선생님, 그리고 콘도 도미오 선생님의 성품도 느껴졌습니다.
이분들은, 세상이야 어떻게 흘러가든,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고, 또 그 신념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잔잔하고 유쾌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이 <효고조선관계연구회>와 <무쿠게회>에서 활동하시면서 다진 신뢰와 우정이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님이 1983년 정홍영 선생님을 처음 만난 후 “나는 정홍영 선생의 금붕어 똥(金魚の糞)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부러웠습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가 건립되던 날, 콘도 도미오 선생님은 그길로 정홍영 선생의 묘소에 찾아가 추도비 건립을 보고드렸다고 합니다. 1985년에 두 사람이 시작한 일이 2020년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열매를 맺은 감격을 정홍영 선생께 알리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이런 동료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금붕어 똥”이 이런 것이라면 나도 누군가의 “금붕어 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의 우정과 동지애에 감격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중 한 분의 부탁으로 추도비 희생자분들의 연고를 찾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배경지식은 갖게 되었지만 준비운동에 불과했습니다. 일을 시작하려면 출발점이 필요했습니다. 그 출발점도 정홍영 선생님의 저서가 제공했습니다. 이 책에는 3장의 매장인허증 사진과 2건의 신문기사 사본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매장인허증은 정홍영 선생이 1985년 봄, “다카라즈카 시사(市史) 편찬실의 편집담당주사 와카바야시 야스시(若林泰)씨로부터” 입수한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고베수도공사(1914-15년) 중에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 3인(김병순, 남익삼, 장장수씨)의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부록에 수록된 매장인허증의 사진은 너무 작은데다가, 세 장이 부채꼴 모양으로 겹쳐져 촬영된 것이어서, 기록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님은 즉시 각각의 매장인허증을 화질 좋은 사진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이 사진을 콘도 도미오 선생님이 소장하고 계셨는지 몰랐고, 이유도 묻지 못했습니다.
한편 정홍영 선생님의 저서의 3부 자료편에는 2건의 신문기사가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고베유신일보>의 기사는 1985년 3월25일 호리우치 미노루 선생님으로부터 건네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날 콘도 도미오 선생님과 현장 답사를 가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제3부 자료편에는 <고베유신일보>와 <고베신문>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었지만, 본문에는 “<고베>, <아사히>, <마이니치> 신문 등이 각각 상당히 자세한 기사를 보도했다”고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도 이 사고를 보도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즉시 정세화 선생님께 고베도서관 조사를 부탁드렸고, 도쿄의 국립기록원에 근무하는 에나 크누기(功刀恵那) 선생께도 <아사히>와 <마이니치> 기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정세화 선생님은 <오사카아사히신문>의 기사를 찾아내셨고, 에나 크누기 선생도 <아시히신문-도쿄판>의 기사를 찾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4건의 신문기사가 확보되었습니다.
<마이니치신문> 기사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추도비 희생자들의 연고를 조사하기 위한 탄탄한 출발점이 만들어진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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