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 공원에는 설명비와 기념비 외에도 15개의 돌덩이가 배열되어 있습니다. 가로 3행 세로 5열로 가지런히 배치된 이 15개의 돌덩이는 안중근 의사가 밝힌 이토 히로부미 척살 이유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고종 황제를 폐위한 죄; 3. 을사 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요한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탈한 죄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탈한 죄 7. 일제 지폐 사용을 강요한 죄 8. 군대를 해산한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 외국유학을 금지한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운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쟁투가 계속되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무사한 것처럼 텐노를 속인 죄; 14.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텐노의 부친 코메이 텐노를 죽인 죄.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 공원에 이런 돌덩이를 나열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척살되어 마땅한 이유를 설명할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 돌덩이들을 보면 “열다섯 가지나 되었던가?” 하는 놀라움과 함께 인터넷을 찾아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토의 죄상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이토를 포살하고 체포된 뒤, 하얼빈의 일본총영사관에서 관동도독부 미조부치 타카오(溝淵孝雄)의 심문을 받을 때 밝힌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목록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집> 제6권 3-4쪽에 수록되었는데, 아마도 안중근 신문조서를 직접 참고했거나,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에 수록된 것이겠습니다.
그런데 당시 세계 각국의 신문들도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보도했고, 척살 이유 15가지도 기사화 했습니다. 싱가폴의 영자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는 1909년 12월2일 5면에 게재한 <하얼빈의 비극(The Harbin Tragedy)>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사망한 이토 백작의 저격자에 대한 예비심문”이 11월16일 끝났고 곧 “비공개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면서, 저격자가 예비심문에서 밝힌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1905년 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3.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고종황제를 폐위한 죄; 5. 군대를 해산한 죄; 6.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7.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8.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9.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10. 일본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11. 한국이 300만파운드의 빚을 지운 죄; 12.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13.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14. 일본텐노의 부친 고메이 텐노를 죽인 죄; 15.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러시아의 연해주의 신문 <머나먼 변방(Далекая окраина)>에 실린 목록도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목록과 같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집의 목록과 당시 외신의 목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순서도 다르고 내용도 조금 다릅니다.
외신의 목록에는 한국에 알려진 목록 중에서 ‘5. 정권을 강탈한 죄’,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탈한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의 외국유학을 금지한 죄’, ‘13. 한국과 일본 사이에 쟁투가 계속되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무사한 것처럼 텐노를 속인 죄’ 등이 빠져있고, “7.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9.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11. 한국에 300만 파운드의 빚을 지운 죄’, ‘15.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가 포함되었습니다.
사료는 (1) 많을수록, (2) 현장과 사건에 가까울수록, (3) 객관적일수록 가치가 높습니다. 일제의 심문조서나,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자료보다는 외신 보도가 더 가치 있는 사료일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과 이토 히로부미 척살이 1백년도 더 전의 일이고, 크라스키노 기념비 공원에 15개의 돌덩이가 배치된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15개의 돌덩이가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한국의 역사학, 특히 근대사 연구는 갈 길이 아주 먼 것 같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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