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지도에는 이 기념비가 한국어로 <안중근 단지 동맹비>로 설명되어 있고, 이어서 러시아어로도 <한국의 역사적 기념물(Исторический памятник Коре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이름은 없지만 고려(Кореи)’의 역사적 기념물이라고 명시되었습니다.

 

 

또 구글 지도에는 <안중근 단지동맹비>를 중심으로 반경 5킬로미터 안에 한국 관련 사적이 3개나 더 있습니다. 남쪽에는 발해 토성, 북쪽에는 연추 하리가 있고, 카리스키노의 동쪽에는 지신허 마을이 있습니다. 이 지역이 고려인의 역사적 흔적이 많은 지역으로,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가 외롭지 않아 보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189번 국도를 따라 조금 더 하산 쪽으로 내려가면 철도와 교차하는 지점이 나오는데, 구글 지도는 이 교차점에 평양으로 가는 철도라고 표기했습니다. 두만강 철교를 넘어 조선행 철도라는 뜻이겠는데, 평양에 갈 수 있으면 서울까지도 갈 수 있고, 목포와 부산까지도 갈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는 가로 10미터 세로 20미터쯤의 장방형으로 조성된 공원에 건립되었는데, 유니베라 농장 입구의 도로에 면한 공원의 머리맡에는 이 기념비의 연혁을 서술한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비석의 앞쪽에는 한국어, 뒤쪽에는 러시아어로 기념비의 연혁을 서술했는데, 내용은 같았습니다.

 

 

“190927일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결사동지 김기룡, 백규삼, 황병길, 조응순, 강순기, 강창두,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김천화 등 12인은 이곳 크라스키노(연추하리) 마을에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단지동맹하다. 이들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기 왼손 무명지를 잘라 생동하는 선혈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대한국 만세를 삼창하다.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은 20011018일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이 비를 세우다.”

 

 

이 설명비가 세워진 날이 20011018일이라고 한 것을 보면 기념비가 처음 건립되었을 때 함께 세워진 설명비입니다. 기념비가 세워진 곳을 크라스키노라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르지만 괄호 속에 연추하리라고 명시함으로써 바로잡았습니다.

 

돌판과 청동판으로 제작된 설명비의 외형 윤곽이 커다란 물방울 모양인데, 이는 12인의 단지동맹원들이 손가락을 잘랐을 때 뚝뚝 떨어지던 핏방울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돌판과 청동판 12개가 겹쳐진 것을 보면 동맹원 12명의 핏방울을 한데 모아 표현했습니다.

 

 

설명비에서 내려다보면 장방형의 공원 맞은편 중앙에 기념비가 보입니다. 기념비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 기념비는 광개토대왕비 모양으로 다듬어진 높이 4미터의 검은 대리석이고, () 기념비는 설명비와 주 기념비의 중간에 왼쪽으로 비껴 세운 작은 비석입니다.

 

 

주 기념비의 정면 중앙에는 안중근 의사의 수인(手印)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전면 하단에는 “190935일경/ 12()이 모이다라고 두 줄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동맹 거사일을 190935일경이라고 한 것은 의문입니다.

 

 

<만고의사 안중근전(계봉우, 1914923일자 권업신문)>은 단지동맹일이 단기 424227일이라고 서술했는데,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1909226, 제정 러시아가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으로는 1909213일입니다. 설명비에 거사일을 27일이라고 한 것은 정확한 음력 날짜이지만, 정작 주 기념비의 날짜는 다소 엉뚱합니다.

 

 

한편 부()기념비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1미터 쯤의 검은 대리석인데, 부기념비의 상단에도 안중근 의사의 수인이 음각되어 있고, 뒷면 하단에는 “201184/ 102년이 지난 오늘/ 12을 기억하다라고 세 줄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날짜는 기념비를 두 번째 이전한 후 제막식을 가진 날짜입니다.

 

 

주기념비와 부기념비에 등장하는 “12이라는 표현도 뜻밖입니다. 비문을 모두 한글로 썼으면서도 12인의 인()자만 한문으로 쓴 까닭이 궁금했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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