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월 레닌이 사망하자 극심한 권력투쟁을 거쳐 정부와 군부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레닌은 소수민족에게 토지분배와 자치권을 약속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모두 폐기하고 집단농장과 공업화를 추진했습니다.
자치권과 토지 약속을 믿고 러시아 혁명을 지지했던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배신에 크게 낙망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고, 오히려 앞장서서 집단농장 건설에 협력했습니다.
1923년 연해주에 거주 고려인은 12만982명에 달했고, 이중 9만명이 블라디보스톡, 포시예트, 수찬, 니콜스크-우수리에 살았고, 약 3만명이 스파스크, 하바로브스크, 이만, 올가 등 연해주 곳곳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들은 1924년 54개의 한인 농촌 소비에트를 결성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29년 연해주의 고려인은 15만795명으로 연해주 전체 인구의 24.3퍼센트를 차지했고, 1930년대 중반에는 20만명에 달했습니다. 이중 80퍼센트 이상이 강제적으로 진행된 ‘전면적 집단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스탈린은 여전히 고려인들을 불신했습니다.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스탈린은 소련이 곧 일본과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고, 전쟁터는 일본에 가까운 연해주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스탈린의 예측대로 1938년 하산호 전투가 발생했고, 스탈린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승리했습니다.
스탈린은 소련이 일본과 전쟁을 벌이면 고려인들은 일본 편을 들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조선을 침략한 일제에 항거하던 고려인들에 대한 심각한 오해였지만, 스탈린은 자신의 판단대로 밀어붙였고, 1937년 9월 일본의 첩자라는 구실로 고려인 지도자급 인사 약 2,000명을 처형한 후, 약 18만 명에 달하는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제한된 수하물만 소지한 채 고려인들은 가축 운송 화물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로 짐승처럼 운반됐습니다. 추위와 기아로 상당수의 노인과 영아들이 사망했습니다. 1937년 10월 25일 소련내무인민위원회 예조프 위원장은 “3만6,442가구 17만1,781명의 고려인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송됐다”고 발표했습니다.
겨울에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살았고, 물가에 있는 사람들은 갈대로 움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봄이 되자 고려인들은 물을 찾아 논을 만들어 가져간 볍씨를 뿌려 벼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첫해부터 풍년이었고 3년 만에 안정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스탈린의 탄압은 계속됐습니다. 1938년, 스탈린은 한국어를 소련의 소수민족 언어에서 제외시키고 한국어학과를 폐지하여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고려인을 적성민족으로 낙인찍어 군복무에서 제외했고, 거주 공화국을 벗어나는 여행도 금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려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집단농장을 모범농장들로 만들었고, 노동 영웅 칭호를 가장 많이 받은 모범민족으로 꼽혔습니다.
우주베키스탄의 ‘김병화 농장’과 ‘포리토젤 농장’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김병화 농장장은 자신이 속한 농장을 최우수 농장으로 이끌어 노동 영웅 칭호를 두 개나 받았고, 그의 사후 농장의 이름이 ‘김병화 농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타슈켄트에는 ‘김병화 거리’도 생겼습니다.
황만금이 농장장을 맡은 포리토젤 농장은 소련에서 유일하게 관광공사에 등록됐습니다. 소련의 모범농장으로 외국인의 관람이 허용된 농장이라는 뜻입니다. 소련에는 3만여 개의 집단농장이 있었으나 관광공사에 등록된 농장은 포리토젤 농장 하나 뿐이라고 합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흐루시초프는 1955년 고려인들의 공민권을 회복시켰고, 1993년 4월에는 러시아 연방 최고회의가 의장 명의의 결정문(No.4721-1)을 발표해,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와 정치적 탄압은 불법이었다고 규정하고, 피해 고려인들과 그 가족, 후손들의 전면적인 명예회복과 보상계획을 발표했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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