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카자흐스탄에서도 고려인들의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고려인들의 공민권은 제한되었고 한국어를 배울 수도 없었고, 군복무나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이 한국어를 소수민족 언어에서 제외하고, 고려인 학교를 폐지하면서 한국어 교육을 중지시켰을 때, 카자흐스탄은 고려인들의 신문 <레닌기치(Ленин киӌи)>와 <고려극장(Корейский Театр)>을 유지하도록 배려했습니다.
<레닌기치>는 구소련에서 한글로 간행되었던 유일한 전국 일간지였습니다. 국가에서 허용한 신문이기에 정부의 법령과 당의 강령을 게재하고 해설하는 기관지의 역할도 했지만, 한인들의 문학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유일한 지면이기도 했습니다.
<레닌기치>는 전성기 때 직원이 60여 명에 이르렀고, 발행부수도 1만2천부에 달했습니다. 타슈켄트, 크질오르다, 두샨베, 프롤제 등에 <레닌기치>의 지사도 생겼습니다. <레닌기치>는 1988년 소련민족우호훈장을 받을 만큼 경영과 내용이 우수했는데, 1991년 <고려일보>로 이름을 바꾸고,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와 이후의 고난에 대한 수기 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알마아타에는 <고려극장>이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수위를 했던 극장인데, 카자흐스탄의 국립극장입니다. 1937년 강제 이주와 함께 고려극장의 대다수 단원들이 크질오르다에 정착했고, 몇 번의 이주 끝에 1969년 알마아타에 자리를 잡아서 오늘에 이릅니다.
<고려극장>은 창립 50주년인 1982년까지 180편이 넘는 창작품을 공연했는데, 그 예술 활동의 공로가 인정되어 소련정부의 명예훈장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이 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에는 재소한인들이 겪어 온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고려극장>은 한인들의 집단농장이나 농촌지역을 순회하면서 1년에 250회 이상의 공연을 가졌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5일씩 공연했다는 뜻이고, 이런 강도의 공연 일정이 일 년 내내 계속됐다는 뜻입니다. 그럴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방과 농촌을 순회하면서 마당의 횃불을 조명삼아 공연하던 <고려극장>은 강제 이주당해 고통 속에 생활하는 고려인들에게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입니다. 배우와 관중이 부둥켜안고 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고려극장>에서는 모든 공연이 한국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각 지역의 동포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알려 주고 민족적 긍지를 높이는 데에도 공헌했습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예술의 명맥을 이어준 <고려일보>와 <고려극장>은 둘 다 연해주 시절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레닌기치>의 전신은 연해주 고려공산당의 기관지 <선봉(1923)>이었습니다. 1937년 편집장을 비롯한 <선봉>의 전 직원들이 강제이주 직전에 숙청되었으나, 농업부장이던 황동훈이 살아남았고, 강제이주로 정착한 크질오르다에서 <레닌기치>를 창간해 <선봉>의 맥을 이었습니다.
<고려극장>은 1930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설립된 노동자청년극장에서 출발했습니다. 1920년대말 연해주 고려인 사회에는 자발적으로 생겨난 예술단체들이 많았고, 그중 신한촌의 소인(素人=아마추어)예술단이 노동자청년극장(1930)으로 이어졌고, 1932년 9월9일 소련 정부의 승인을 받아 직업적인 전문극장으로서 <극동지역 고려극장>이 출발했습니다.
이렇게 연해주에서 시작된 신문과 극장이 강제 이주 후에도 중앙아시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고려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1991년 이래 많은 고려인들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 연해주로 돌아오고 있고, 연해주의 고려인 인구가 5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시절에 민족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었던 고려인 학교와 신문과 극장을 재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기와 냉전 시절에는 국제 정세와 국내 상황 때문에 돕지 못했지만, 21세기에는 한국 동포들이 고려인 동포들의 노력을 돕는 것이 의무일 것입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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