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 갖는 권리이다. 서양어 휴먼 롸이트(human right)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내포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똑같이 누려야 하는 권리’가 인권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며 평등한 자연권이라는 말이다.
이 같은 인권 개념이 지금은 당연시되지만, 인권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40억년 인류 역사에서 오래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을 기원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니까, 대략 2백50년쯤이다.
그 이전에는 평등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과 평민과 노예 등의 신분제도가 오래 유지됐고, 그것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프랑스혁명이었다. 지금도 유럽의 일부국가에는 귀족제도가 남아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자연권은 보편성과 평등성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보편적이고 평등한 자연권으로서의 인권을 해방 이후에야 누리게 된다. 조선은 양반과 상민과 천민의 구별이 있던 전근대사회였고,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인은 일본인과 평등한 권리를 누리기는커녕, 차별대우를 받았던 ‘노예상태“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수구세력 중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무식한 주장이다. 일제는 자국의 ‘국적법’을 조선인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조선호적령’으로 조선인을 관리했을 뿐이다. 일본의 ‘법’도 아니고 총독의 ‘령’이었다.
조선을 병합한 후 일제는 조선인을 ‘조센징’이라고 불렀고, 일본인 대접을 한 적이 없다. 조선인들이 일본 국적을 가졌다면, 당연히 국적법상의 ‘일본국적 이탈권’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을 막아야 했던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일본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제는 ‘국제법’상으로는 조선인도 일본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독립투사들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안중근 의사의 재판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경쟁을 벌였다. 러시아는 자국 영토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일제는 안중근 의사가 ‘국제법’상 일본인이라며 재판권을 탈취했다.
국제법상 일본인 취급을 받으면서 정작 일본 국내법상 일본인 취급을 받지 못한 상황은 “노예제도”였다. 1945년 8월 포츠담에서 전후 대책을 논의했던 트루먼과 처칠과 스탈린은 “한국인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한국을 적절한 시기에 해방, 독립시킨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한국인의 노예상태”는 그보다 2년 전인 <카이로 선언>에도 명시됐다. 루즈벨트와 처칠, 장제스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발표한 이 선언에는 “(영,미,중) 3대국은 조선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고 선언했다.
이 선언문이 발표되자 당시에는 “적당한 시기에”라는 구절 때문에 말들이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미,영,중의 3국 지도자들이 “조선민의 노예상태”를 직시했다는 점이다. 즉, 일제의 지배 아래서 일본인처럼 온갖 의무는 져야 했지만 일본인으로서의 권리는 전혀 누리지 못하는 조선인의 상황을 “노예상태(enslavement)”라고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고 태평양 전쟁이 격화되는 중에도, 일제는 조선인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지 못했다. 일본인 대접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인을 징집하는 대신 “지원병 제도”를 시행했다. 조선인 청년들에게 자원해서 입대하라는 건데, 조선인 청년이 개죽음을 위해 지원할 리가 없다. 말만 ‘지원’일뿐 일제는 지역별 할당까지 만들어 “강제 지원”을 강요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한국의 수구세력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얼빠진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서 퍼뜨리는 언론이 큰 문제다. 한국 수구세력과 언론이 모르고 그런다면 무식한 것이고, 알면서도 그런다면 사악한 것이다. sns가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한국민은 그게 정말인 줄 알았을 것이다.
암튼,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인=한국인들은 보편적이고 평등한 인권을 누리지 못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권을 누릴 가능성이 생겼다. 따라서 프랑스의 인권의 역사가 250년이라면 한국의 인권의 역사는 80년에 불과하다.
한편, 1919년 4월11일의 상하이 임시정부의 헌법에 인권이 보장되어 있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반포당시 “임시헌장”이라고 했다가 그해 9월11일 “임시헌법”으로 개명된, 10개조로 구성된 이 헌법의 제3조와 제4조가 대한민국 인민의 인권을 보장했다.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통신,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누린다.
이 조항은 서양 각국의 기준으로도 손색이 없는 인권 조항인데, 몽테스키외의 3권분립론을 수용하면서, 그 바탕인 천부인권 개념을 자연스럽게 전제했기 때문이다. 다만, 일제 강점 상황으로 이 헌법을 국내에 적용하지 못했던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이 “임시헌법”은 1948년 7월17일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으로 이어지면서 인권개념도 그대로 전수됐다. 제5조는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을 수호할 의무가 정부에게 있음을 명시했다.
제8조에서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했고, 제9조는 신체의 자유, 제10조는 거주이전의 자유, 제11조는 통신의 비밀의 자유, 제12조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 제13조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제14조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 제15조는 재산권, 제16조는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제17조는 근로의 권리와 의무, 제18조는 노동권, 제19조는 노동할 수 없는 국민의 생활유지의 권리, 제20조는 남녀평등권 등을 보장했다.
또 제7조에서는 “외국인의 법적지위는 국제법과 국제조약”에 의해 보장된다고 함으로써,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도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인권을 대부분 누릴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제헌 헌법의 인권 내용은 향후 7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도 유지되거나 강화됐고, 따라서 헌법상으로는 대한민국의 국민과 외국인들에게 인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승만의 독재시기, 그리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군사독재 시기에는 헌법을 무시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이승만의 부정선거, 박정희의 쿠데타와 유신 행각, 전두환과 노태우의 쿠데타와 광주학살은 피로 점철된 인권 유린의 역사였다.
강릉에도 인권탄압의 사례가 있다. 의문사 피해자 김성수 열사이다. 1986년 강릉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리학과에 입학한 그는 그해 6월18일 행방불명, 6월21일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시멘트 덩이를 매단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해녀 김씨가 이를 신고하자, 경찰은 자살로 처리했으나, 18년 만인 2004년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성수의 죽음에 공권력이 개입돼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명문화된 헌법의 인권조항이 있어도, 무시되었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인권운동은 이미 명문화된 인권이 지켜지도록 요구하고 감시하고, 위반사항이 처벌되도록 해야 한다. 시간이 가면서 과거의 인권 유린이 조금씩이나마 밝혀지고, 처벌과 배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강릉을 비롯한 전국의 인권 운동가들은, 한국에서 인권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은 아직도 지난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올해의 제25회 <강릉인권영화제>의 표어는 “당신을 지켜주는 인권”이다. 이 표어는 작년의 제24회때도 사용됐는데, 거기에는 “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차별은 인권유린의 가장 가시적인 형태이다. 인권의 보편성과 평등성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이글에서는 <무용신>의 일본내 활동에서 목격한 재일조선인/한국인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 중에서, 통명이라는 제도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인권유린 상황을 보고하고자 한다. (jc, 20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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