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강산보> 시사회가 있은 지 일주일 후인 19371229, 최승희는 오후 3시에 요코하마를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호화여객선 치치부마루(秩父丸)’ 1등실에 승선했다. 마침내 1935년 말부터 2년여 이상 준비하면서 기다렸던 세계 순회공연 길에 오른 것이다.

 

최승희는 치치부마루의 화물칸에 악기와 의상, 공연 소도구를 담은 수십 개의 여행용 가방을 실었는데, 그중에는 <대금강산보>의 필름이 담긴 가방도 포함돼 있었다. 최승희는 자신이 절실하게 원했던 <대금강산보> 필름을 가지고 세계 순회공연의 장도에 올랐던 것이다.

 

최승희가 도쿄를 떠난 지 3주 후, 1938121<대금강산보>는 마침내 도쿄 <후지칸(富士館)>에서 개봉됐다. 아사쿠사6구에 위치한 <후지칸>은 니카츠 영화사의 개봉관이었으므로, 타마카와 촬영소에서 제작된 <대금강산보>가 이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은 예정된 것이었다.

 

 

<대금강산보>는 1938년 1월21일, 도쿄 아사쿠사6구의 <후지관>에서 개봉되었다.

 

<후지관>19088월에 개관한 객석 18백석의 대규모 영화전문 극장이었다. <후지관>의 개관은 당시 일본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일었던 영화전문극장 개관 러쉬의 일부였다. 이 지역 최초이자 일본 최초의 영화상설관 <텐키칸(電気館)>1903년 아사쿠사6구 설립되었는데, 이는 쇼치쿠(松竹) 영화사의 개봉관으로 최승희의 <반도의 무희(1936)>도 여기서 개봉되었다.

 

이후 190741일의 <신성관(新聲館)>, 7월에는 오사카 최초의 상설관 천일전전기관(千日前電気館), 716일 도쿄 아사쿠사6구의 삼우관(三友館), 1220일 오사카의 제일문명관(第一文明館), 19087월에 아사쿠사6구의 대승관(大勝館)이 줄줄이 개관했고, 마침내 그해 8<후지칸(富士館)>이 개관한 것이다. 이후로도 10월 나고야 최초의 상설관 문명관, 11월에는 천일전일본관(千日前日本館)이 문을 열어, 이른바 일본은 영화전문 상영관 시대가 열렸다.

 

<대금강산보>는 주연 여배우가 없는 가운데 개봉된 것이어서 홍보와 판촉에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반도의 무희> 개봉 때와는 달리 도쿄에서 발행되던 수십 종의 일본 잡지에는 <대금강산보>에 대한 기사가 거의 없었다.

 

더구나 <반도의 무희> 개봉은 도쿄에서만도 4개 극장에서 동시에 이뤄졌지만 <대금강산보>의 개봉관은 <후지칸> 하나뿐이었다. <대금강산보>의 예상 흥행 수준이 <반도의 무희> 때보다 낮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금강산보>는 보통 이상의 흥행을 이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1월말 도쿄의 <후지칸> 상영이 종료되자 오사카의 텐노지 신세카이 공원에 위치한 <다이산칸(大山館)>21일부터 상영을 이어받았다. 오사카의 니카츠 개봉관인 <다이산칸>이 발행한 홍보지 629호에는 <대금강산보>을 다음과 같이 홍보했다.

 

1939년3월 <조선악극단>이 도쿄의 <화요극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의 맨 왼쪽의 입간판을 보면 이 극장의 당시 상영 영화가 <대금강산보>였음을 알 수 있다.

 

“... 반도의 기이한 명승, 금강산의, ... 경승과 오랜 제사 행사의 진기함, ... 미지의 나라 조선을 남김없이 소개하고, 자신감 넘치는 최승희의 멋진 무용장면, ... 요염한 미희, 최승희의 무용 걸작집... 천연미와 미술미를 혼연시킨 이채편...”

 

오사카 <다이센칸> 상영은 193821일부터라고 되어 있었으나, 이후에도 일본 각지에서 <대금강산보>가 지속적으로 상연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진도 발견되었다. 1935년에 결성된 <조선악극단>은 소속단원이 35명에 달했던 본격 악극단으로, 19393월 일본 순회공연을 단행한 바 있었다.

 

39일자 <매일신보>는 이 악극단이 카게츠(花月)극장에서 공연한다는 광고문이 실렸고, 악극단의 트럼펫 연주자 현경섭의 유품 중에서도 단원들이 <카게츠극장> 앞에서 촬영한 기념사진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사진 속의 <카게츠극장>의 상연 영화가 <대금강산보>였던 점이 발견된 것이다.

 

1938121일 도쿄에서 개봉된 <대금강산보>가 적어도 1년 이상 오사카와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서 지속적으로 상연되고 있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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