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대금강산보>의 필름은 소실되었다. 그것이 어떤 영화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사의 문헌도 남아 있지 않다. 즉 원작이나 각본도 없고 필름도 없으니 <대금강산보>의 내용이나 작품성을 짐작할 자료가 거의 없는 셈이다.
다만 여기저기 흩어진 단편적인 미디어의 기사와 일본영화 데이터베이스의 배역 기록을 참고하면 그것이 대략 어떤 내용의 영화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우선 <대금강산보>의 일본 개봉을 앞두고 살포된 전단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반도의 기이한 명승, 금강산의, ... 경승과 오랜 제사 행사의 진기함이 줄거리와 병행되어서, 미지의 나라 조선을 남김없이 소개하고, 그에 더해, 자신감 넘치는 최승희의 멋진 무용장면, ... 요염한 미희, 최승희의 무용 걸작집... 천연미와 미술미를 혼연시킨 이채편...”
이 홍보문에서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별로 없다. 다만 ‘유서깊은 제사 행사’가 등장한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1938년 1월29일자 <경성일보> 3면에 게재된 영화 광고문에는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신기한 명승지 대금강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반도의 무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로맨스를 묘사... 최승희의 반생을 가로지른 고투를 이야기하는 애련의 비창곡...”
‘고통스런 투쟁’이란 무용가로 성공하기 위한 분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로맨스’와 ‘애련의 비창곡’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주인공 이승희가 무용가로서의 꿈은 이루지만 사랑까지 이루지는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금강산보>는 무용영화이므로 암시와 복선이 깔리고 반전이 숨어있는 복잡한 스토리는 필요하지 않았다. 단순한 스토리 속에서나마 금강산의 승경을 배경으로 최승희의 무용 자태가 소개되는 영화였음에 틀림없다. 다행히도 1938년 2월3일자 <경성일보>에는 <대금강산보>에 대한 짧은 비평문이 게재되었고 여기에 대강의 줄거리가 서술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정략결혼을 피하여 조선으로 도망간 작곡가 지망의 일본인 대학생 토모다(=가사하라 츠네히코)는 부관 연락선에서 무희 이승희(=최승희)를 만난다. 금강산 속에 자리 잡은 그녀의 생가를 방문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 뒤, 도모다는 부모의 승낙을 얻기 위해 도쿄로 돌아간다. 하지만 토모다의 부모가 승희와의 결혼을 허락할 리 없다, 그는 사랑에 몸부림치며 부모님의 집을 떠나 학업을 포기하고 <대금강산보> 작곡에 몰두한다.
“한편, 무희가 되려는 승희도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무단으로 상경, 향토무용을 기초로 새로운 무용공부에 전념한다. 이윽고 승희의 힘겨운 정진은 결실을 맺어 ‘반도의 무희;로서 화려한 데뷔의 날이 왔다. 그러나 바로 그날 병상에 누운 토모다는 완성된 <대금강산보>를 승희에게 바치면서 죽어간다.”
1937년 12월7일자 <미야코신문(都新聞)>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서술이 한 가지 등장한다. 석왕사에 대하여 “이 절은 올해가 축성 1천2백년 째였기에 11월4일의 촬영을 위해 특별 임시 대제(大祭)를 열게”했다고 설명하면서 그 장면의 촬영을 위해 “시골사람 총출동으로 거의 2천명에 가까운 엑스트라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80년 전의 영화 촬영에 2천명 가까운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보다 20년 후에 제작된 <벤허(1959)>의 전차경주 장면의 엑스트라도 1천5백명이었다. 그런데 <대금강산보(1938)>의 석왕사 축제장면 엑스트라가 2천명이었다고 하니, <미야코신문>의 서술이 오류가 아니라면, <대금강산보>는 생각보다 규모가 큰 엄청난 영화였다는 뜻이다.
그 같은 대규모의 석왕사 축제 속에서 최승희 선생은 <승무>나 <검무>, 혹은 <아리랑>이나 <봉산탈춤> 같은 조선무용 작품을 공연했던 것일까? 최승희의 무용작품뿐을 보고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2천명의 엑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라도 <대금강산보>의 필름이 조만간 어디선가 발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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