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강산보>는 한 달의 촬영과 한 달의 편집을 거친 뒤 완성되어서 1937년 12월21일 시사회를 열었다. 장소는 도쿄 소재 니카츠 영화사의 타마카와 촬영소였는데, 이 시사회 참석자들이 눈길을 끈다.
12월24일자 <매일신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시사회에 “황공하옵게도 이왕(李王) 전하의 태림(台臨)으로 받들어 뫼시고, 오노 로쿠이치로(大野緑一郎) 정무총감과 요시다 히로시(吉田浩) 철도국장 등이 출석”했다고 전했다.
‘이왕 전하’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으나 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나라를 잃은 영친왕(英親王, 1897-1970)을 가리킨다. 1907년 황태자로 책봉된 후의 정식 호칭은 ‘의민태자’이지만, 조선이 일본의 보호령이 되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그해 12월 강제로 일본 유학에 보내졌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합병되자 황제 순종은 왕으로 격하됐고, 의민태자도 왕세자로 격하되어 일본 황족에 준하는 예우를 받기 시작했다. 1920년 4월 그는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와 결혼했다. 해방 후 귀국하려했으나 이승만 정부가 거부했고, 박정희 정권 때에야 국적을 회복했으나, 여전히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살다가 1970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사망했다.
이왕은 어떻게 <대금강산보>의 시사회에 참석하게 되었을까? 신문 보도에는 경위가 나와 있지 않지만, 주최측이 이왕을 초청했거나 이왕의 요청이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 머물며 아카사카 저택에 유폐되었던 이왕은 조선 미술품에 관심이 높았고, 특히 금강산을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왕 쪽에서 요청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기는 하다.
어떤 경우이든 이 자리에서 최승희는 이왕을 만날 수 있었고, 10세 때부터 일본에 억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조선어를 구사했던 이왕은 최승희와 조선어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승희에게 <대금강산보> 제작에 대한 이모저모를 묻기도 하고, 또 일주일 후면 요코하마를 출발해 장도에 오를 세계 순회공연에 대해서도 질문했을 법하다.
이왕과 최승희는 그보다 12년 전에 만났을 수도 있었다. 영친왕이 일본에 억류당한 이후 그는 도쿄 치요다구 소재 아카사카의 이왕 저택에 거주했는데, 이 저택은 조선의 숙명, 진명, 양정고보 학생들의 단골 수학여행 목적지의 하나였다. 이 세 학교는 영친왕의 어머니 엄귀비가 설립한 학교들이었기 때문이다. 최승희가 속했던 숙명17회 졸업생들도 3학년 시절인 1925년 일본 수학여행 중에 이 저택을 방문했고 이왕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승희는 이때 이왕을 만나지 못했다. 1922년 최승희 집안이 몰락한 이래 지속적인 가난 속에 살았기 때문에 수학여행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 80명의 동급생 중에서 일본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학생은 5명으로 알려졌는데, 최승희가 그중 한명이었다.
1925년에 이왕을 만나지 못했던 최승희는 마침내 1937년 12월21일 <대금강산보> 시사회에서 이왕을 만날 수 있었다. 아카사카의 이왕 저택에서는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15킬로미터쯤 서쪽의 초푸시 타마카와 6초메의 니카츠 타마카와 촬영소에서였다.
이왕은 저명한 무용가로 성장한 최승희가 숙명여고보 출신인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어머니가 설립한 학교의 졸업생이 일본 최고의 예술가가 된 것을 대견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왕이 금강산 영화를 관람한 것은 <대금강산보>가 처음은 아니었다. 1929년 조선을 방문했을 때 이왕은 다른 “금강산 활동사진”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해 10월6일자 <매일신보>는 “(영친왕) 전하께서 ... 조선사회사업과 금강산, 조선농업 등에 대한 제 활동사진을 어람하”셨으며, “<금강산>이란 활동사진에 대하여는 전하께서 실지로 어관람(=방문)하실 터이므로 예비지식을 준비하시기 위하여 더욱이 열심히 어람하셨더라”고 보도했었다.
직접 금강산 관광까지 했던 이왕은 <대금강산보>에 촬영된 금강산을 어떤 기분으로 감상했을까? 자신의 영토였을 금강산을 빼앗기고 일본 땅에서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그로서는 비록 영화로나마 다시 보는 금강산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을 것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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