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는 샌프란시스코와 LA에서 각 1회씩의 공연을 간신히 마치고 <대금강산보>도 상영하지 못한채 2월3일 뉴욕으로 출발했다. 뉴욕 길드극장 공연은 2월19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공연까지 2주일의 시간이 있었으므로 <대금강산보>의 뉴욕 상영을 위한 서류작업과 검열통과를 위한 시간은 충분했겠지만, 일본공관과 조선인 동포들 사이의 대립적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조선인 동포들이 유태인, 중국인들과 합세해 최승희의 공연을 보이콧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인들이 나선 것은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난징을 빼앗기면서 중국 정부가 와해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었고, 유태인들은 일본이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반일 시위와 일화배척(日貨排斥=일제 불매운동)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밖에도 침략적 제국주의 국가 일본에 항의하는 미국내 사회주의자들도 이에 참여했다.
최승희는 뉴욕에서 조선인 동포로부터 전화협박을 받기도 했다. 정병호(1995:141, 145)와 강준식(2012:210)은 최승희가 투숙한 호텔로 전화를 건 익명의 교포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배일연설을 하라”면서 “그러지 않으면 공연을 방해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서술했다.
이같은 협박은 심각한 범죄행위였지만 두 평전자의 서술에 출처가 밝혀져 있지는 않았다. 강준식(2012)은 내용의 유사성이나 서술의 구성으로 보아 정병호(1995)를 인용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인용의 주는 달려있지 않았다.
최초의 최승희 평전인 다카시마 유사부로(1959)는 호텔 전화협박 사건에 대한 서술이 없고, 강이향(1993)은 호텔로 걸려온 전화를 언급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협박’ 전화였다고 서술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정병호(1995)는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어떤 자료인지 명시하지 않았다. 김찬정(2002)과 정수웅(2004)은 이 협박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평전에 따라 서술에 차이가 있고 출처도 모호하지만 최승희가 받았던 뉴욕 호텔 전화협박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서술이 구체적이고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최승희나 안막으로부터 직접 들은 사람의 증언일 것이다. 안막의 동생 안제승, 혹은 최승희의 제자이자 시누이 김백봉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LA 사건의 증언에서처럼 뉴욕의 일본 영사관을 ‘대사관’이라고 한 것을 보면 증언자는 같은 사람, 즉 안제승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 사건은 이후 연쇄적 결과로 이어졌다. 전화협박 사건 이후 “뉴욕 일본 대사관(=영사관)에서는 뉴욕 경시청에 (최승희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공연할 때 무대 위와 화장실까지 경관이 지키는 소동”(강이향, 1993:137; 정병호, 1995:146; 강준식, 2012:211)이 벌어졌다고 한다.
또 “거리에는 ‘최승희의 공연을 보지 말자’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메트로폴리탄 뮤직 컴퍼니에 최 승희와의 계약을 파기하리는 압력이 가해졌”다. (정병호, 1995:146). 결국 메트로폴리탄 뮤직 컴퍼니와의 계약은 파기되었고 최승희의 향후 미국 공연은 모두 취소되었다.
뉴욕에서의 일련의 사건이 일본에 와전되면서 최승희는 자신이 배일행위자로 몰리게 되었고, 안막과 최승희는 급히 해명의 편지를 보내어 이를 수습해야 했다.
이렇게 급속히 악화되는 상황 때문에 최승희는 뉴욕에서도 <대금강산보>를 상영할 수 없었다. 정병호(1995:149)는 최승희가 “자기가 주연한 <대금강산보>라는 영화를 ... 상영... 하려 했으나 이 일 또한 반일행위로 감시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어 취소”했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최승희가 이 영화의 상영을 포기한 것은 “반일행위로 감시”받았기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직접 나서서 외국 상영을 위해 제작한 <대금강산보>가 뉴욕에서 상영되는 것을 ‘반일행위’로 분류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대금강산보>를 상영하지 못한 것은 그것이 일본영화였기 때문이다. 당시 광풍처럼 뉴욕을 휩쓸던 ‘일화배척’ 운동의 물결 속에서 보이콧 당할 것이 뻔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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