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근대무용가로 부산을 방문해 공연을 가진 것은 이시이 바쿠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에 약 5개월 앞선 1925년 11월3일 후지마 시즈에(藤間靜枝)가 부산을 방문한 바 있었다.
1925년 11월5일의 <매일신보>에 따르면 후지마 시즈에는 11월3일 부산에 도착, 11월4일밤 부산에서 공연을 가졌고, 11월5일 밤에 경성에 도착, 11월7일과 8일, 경성공회당에서 2회의 공연을 가졌다.
후지마 시즈에의 공연은 부산과 경성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정상급 무용가가 처음으로 조선을 방문해 공연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뿐 아니라 조선의 무용가들도 그를 반겼고, 그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일대 성황을 이뤘다.
후지마 시즈에의 경성 첫날 공연 당일인 1925년 11월7일의 <매일신보>는 “일본의 무용계의 여왕 후지마 시즈에 여사의 일행이 경성에 도착한 후로 시내의 인기는 거의 백열화”하였다고 보도했다. ‘백열화’는 ‘하얀 색이 될 정도로 뜨거웠다’는 뜻이다.
첫날 공연 상황을 보도한 1925년 11월9일의 <매일신보>는 “경성 시중은 물론이요 멀리 인천 수원 등으로부터” 후지마 여사의 무용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군중이 “개장 한 시간 전부터 공회당 부근에 사람바다를 이루”었고 “정각인 여섯시가 되자 장내는 이미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11월3일의 <매일신보>는 후지마 시즈에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었다.
“그(=후지마 시즈에)는 본시 일본에서 미인의 산지가 되는 눈의 나라 니가타(新潟)에서 태어났다. 미인은 박명이라고 처녀의 몸은 구르고 굴러서 도쿄에서 기생노릇을 하게 되었었다. 어리고 고은 그는 비록 기생노릇은 하나 살에 주린 남자의 두려운 손길에는 죽기를 한하고 넘어가지 않았으며,
“자나 깨나 문학서류만 애독을 하다가 당시 문명이 천하에 높은 젊은 문학가 나가이 카후(永井荷風, 1879-1959)씨와 사랑의 낙원을 열었으나 그의 애닯게 기대하던 첫사랑은 얼마 아니하여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그는 눈물을 뿌리며 ‘나는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가슴에 남은 정혈은 모조리 무용을 위하여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그 길로 무용연구에 심신을 바치자 일진월보하는 그의 천재는 차차 광명을 찾게 되어 나중에는 세상의 칭찬의 표적이 되었으며, 뒤를 이어 규수화가와 청년예술가들 사이에는 그의 빛나는 무용의 천재를 영원히 북돋고자 후지카게카이(藤陰會)라는 후원회까지 세우게 되었다.”
이시이 바쿠도 후지마 시즈에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그는 저서 <춤추는 바보(1955)>에서 후지마 시즈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후지마 시즈에 씨가 신무용을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우리가 제극의 연습생 시절(1911-1915년)이었던 것으로도 기억한다. 그 후 후지마 시즈에는 일본 고유의 고전 무용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스승 후지마 종가와 문제를 일으켰는데, 시즈에 씨는 순순히 후지마라는 이름을 종가로 돌려보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후지마의 그림자를 따르기 위해 성을 후지카게(藤陰)로 바꾼 것은 당시 우리들 사이에 평판이 자자했다.”
“내가 시즈에씨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니, 아주 싹싹하고 가시가 없고, 숨기는 것 없는 솔직한 태도가 좋았다. 그 후, 십여 명의 무용가들과 함께 무용가 클럽이라는 사교 클럽을 만들어, 매월 한 번 긴자의 모나미(モナミ)에서 식사를 함께 했으므로, 무용에 대한 서로의 의견이라든가 불만 등을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일본무용연맹도 약 1년간의 회합 속에서 만들어졌다.”
“어느 해 말 마루노우치(丸の内)의 마플(マープル)에서 후지카게카이 20주년 기념회가 열렸다. 모인 사람이 2백 명이었다. ... 시즈에 씨의 후원회도 훌륭하지만, 여자의 솜씨 하나로 오늘의 지위를 쌓아 올린 후지카게 시즈에는 실로 훌륭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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