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요약과 결론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최승희의 민족 정체성 형성 과정과, 그것이 유럽 순회공연 중에 어떻게 주장되었고, 현지 매체들에 의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최승희는 어린 시절과 숙명여학교 시절을 통해 자부심에 바탕을 둔 <조선인 정체성>을 형성했고, 일본 유학 기간에는 <예술가 정체성>, 조선 활동 시기에는 진취적인 <신여성 정체성>, 그리고 도쿄를 중심으로 벌인 일본 활동 시기에는 <세계일 정체성>을 내면화했다. 세계 순회공연을 시작할 무렵 최승희의 네 가지 정체성은 유기적으로 결착되었고, “조선무용을 세계에 알리고, 자신도 정상급 예술가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이 목표는 미국 공연에서는 좌절되었다. 한편으로는 미국 내 반일 정서와 일제 불매운동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내 반일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최승희를 일본의 예술사절로 삼으려던 일제의 숨은 의도 때문이었다. 위험하고 미묘한 상황 속에서도 최승희는 자신의 조선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 입국서류에 자신이 ‘코리안’임을 밝혔고, 미국민과 일제 외교당국이 부딪히는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무용이 ‘조선무용’임을 강조했다.
일부 평전자는 미국 순회공연의 실패가 최승희와 재미 조선인 동포들 사이의 갈등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재미 조선인 단체들의 기관지였던 <신한민보>의 기사들에 따르면 재미 동포들은 최승희의 처지를 이해했고, 교민들의 요구는 협박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일제 불매운동으로부터 최승희의 무용공연을 살려내기 위한 조언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최승희는 유럽 공연에서 자신의 <조선인 정체성>을 관철해 냈다. 프랑스에 도착한 순간부터 ‘조선인(꼬레안느)’임을 강조했고, 파리 언론과의 인터뷰와 공연 홍보를 통해 자신은 ‘조선인 무용가’이며 자신의 작품들은 ‘조선무용’임을 주장했다.
최승희의 노력이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어서, 살플레옐 공연 전에는 거의 모든 파리의 매체가 최승희를 ‘일본인 무용가’로 소개했다. 이는 일본 대사관의 개입 때문이었다.
일본 대사관은 최승희 환영리셉션을 열었고 일본인 유학생과 교민들을 동원하는 등 최승희 공연을 성공시키기 위한 협조를 아끼지 않았는데, 이는 최승희를 일본 예술사절로 활용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일본 대사관의 개입으로 초기의 파리 언론은 최승희를 ‘일본인 무용가’로 인식했다.
초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최승희는 ‘꼬레안느 무용가의 꼬레안느 무용’을 꾸준히 홍보했다. 또 최승희는 살플레옐 공연과 샤이오 공연의 레퍼토리를 조선의 역사와 풍습을 종횡으로 구성해 발표했다. 입국 서류와 신문 광고를 통한 최승희의 조선인 정체성 주장은 일제 외교공관의 개입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공연을 통한 주장은 효과가 컸다. 살플레옐 공연 이후 최승희의 정체성은 ‘꼬레안느 무용가’ 즉 조선인 무용가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같은 경향성은 파리 언론의 146개 기사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 살플레옐 공연 전후에 보도된 기사 79건과 샤이오 공연 전후의 기사 67건을 조사한 결과, 최승희를 ‘꼬레안느 무용가’로 소개한 기사는 살플레옐 공연 전에는 6퍼센트(54건중 3건)에 불과했으나, 공연 후에는 80퍼센트(25건중 20건)로 대폭 증가했고, 샤이오 공연 때에는 93퍼센트(67건중 62건)에 달했다.
샤이오 공연을 보도한 주요 신문의 기사 5건이 최승희를 국적이나 민족명 호칭 없이 이름으로만 보도한 것도 최승희가 ‘꼬레안느 무용가’임을 전제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 비율은 1백퍼센트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최승희는 유럽 순회공연을 통해 조선무용의 예술성을 널리 알렸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의 조선인 정체성까지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한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최승희가 유럽 공연의 레퍼토리를 치밀하게 구성했고 완벽하게 발표했기 때문이라고 믿어진다. 파리의 일제 외교관들은 정치력으로 최승희의 민족 정체성 주장을 누르고 일제의 문화선전대로 활용하려 했지만, 최승희는 예술의 힘으로 정치를 누르고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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