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조선학교 운동장에서 마주쳐 질문을 드렸던 분도 알고 보니 교원이셨습니다. 연장 상자를 옮기시기에 일꾼일 줄 알았지만, 운동회가 임박하자 모두가 연습 준비에 뛰어든 것이지요.

 

재일 조선학교에서 연례 운동회는 아주 중요한 행사입니다. 학생과 교직원과 학부모가 모두 모이는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의 바자나 전시회, 음악회나 종목별 체육경기 등도 학교의 구성원들이 모이는 행사이기는 했지만 연례 운동회야말로 학부모를 포함하여 전 학교 구성원이 한데 모이는 가장 큰 행사입니다.

 

이 같은 학교 운동회는 아마도 70년대까지 한국에서도 성행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지방의 작은 학교들에 명맥이 이어져 왔던 것 같지만, 어느 시점부터 한국에서는 거교적 연례 운동회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재일 조선학교에서는 그것이 전통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9년 9월말, 필자는 교토조선중고급학교를 방문했습니다. 학생들이 체육복 차림으로 운동장에서 연례 운동회 연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긴카쿠지(銀閣寺) 인근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기다렸다가 12시 반쯤 다시 교토조선학교로 갔습니다. 정문에 들어서자 이미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운동회 연습까지 아직 30분쯤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들 자유롭게 운동장을 거닐거나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의 구령대와 그 옆의 차일 안에서는 교원으로 보이는 어른들이 분주하게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말씀을 나눴던 낯익은 교원을 찾아서 다시 돌아왔다고 말씀을 드리자, 그 교원은 금방 여성 교원 한분을 차일 쪽으로 모셔왔습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눴습니다.

 

무용부 지도교원은 윤경선 선생이셨고, 젊다기보다는 어리다고 해야 할 연배이셨습니다. 한국식으로라면 사범대학을 마치고 첫 학교에 부임하신 분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저는 깍듯이 인사를 드리면서 내 소개를 했고, 그동안 해 온 최승희 연구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조선학교 무용부의 활동과 작품에 대해 배울 수 있겠느냐고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윤경선 교원은 젊기는 했으나 기품 있어 보였고, 얼굴도 의지력이 엿보이는 표정이었습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몇몇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거나 다가와서 말을 걸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온화한 것 같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권위가 실린 몸짓이나 말투로 학생들의 인사를 받거나 지시를 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카리스마를 지닌 것 같았습니다.

 

교토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이 2019년 운동회를 연습하고 있는 장면.

 

윤경선 교원은 최승희 선생이 교토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을 하셨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최승희 선생의 공연 자료를 조사하다가 교토조선학교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에도 흥미를 느끼신 것 같았습니다.

 

전날까지 교토시립도서관에서 찾은 자료에 따르면 최승희 선생은 해방 전까지 교토에서 적어도 5회의 공연을 가졌습니다. 1935118일의 교토 아사히 회관 공연이 첫 공연이었고, 그 뒤로도 1936113일과 1937127일 교토 다카라즈카극장, 194136일 교토 아사히 회관에서 조선무용을 공연했습니다. 또 일부 기록에는 19431월에도 간사이 공연을 가졌다고 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여기에 교토 공연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 들으신 윤경선 교원은 내가 가진 최승희 선생과 조선학교 무용부에 대한 관심이 일회적이거나 범상하지 않은 것을 아신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잠깐 기다려달라고 말한 후 교장 선생님을 모셔왔습니다.

 

저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교장선생님은 다소 근엄한 모습이었지만 명랑한 표정이셨습니다. 재차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윤경선 교원에게 했던 설명을 요약해서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곧 운동회 연습이 시작될 예정이었으므로 마냥 대화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교장 선생님께서 제안하셨습니다.

 

“10월말 오사카에서 <중앙예술경연대회>가 열립니다. 거기에 오시면 조선무용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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