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23개 극장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부산의 주요한 문화 공간이었던 곳으로 부산공회당(1928-1945)이 있다. 1925년 4월17일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가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해 오면서 부산부를 대표할 문화공간으로서 부산공회당 건립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1926년 행관의 극장주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1860-1942)가 10만원의 기부금을 내는 등 17만여원의 공사비가 조성됐고, 만주철도(주)가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1926년 8월 공사가 시작됐다. 이후 연인원 2만5천명이 공사에 투입되어 1년반의 공사 끝에 1928년 3월 준공되었고, 1928년 4월9일 정식으로 개관되었다.
부산공회당의 규모는 건평이 194평, 총건평이 640평(1층 194평, 2층 192평, 3층 180평, 4층 56평, 지하 17평)으로 벽돌 및 철근 콘크리트 병용으로 근대식 4층 건물로 건축되었다. 조선총독부 건축과장 岩井이 공회당의 설계 및 공사 감독을 맡았고, 시공은 국제관의 극장주이기도 했던 조선토목협회의 기노시타 모토지로(木下元次郞)가 담당했다.
수용인원은 대집회실이 1천석, 소집회실이 40-80석이었지만, 2층과 3층의 계단식 관람석까지 합치면 1천5백명의 관람객 혹은 6백명의 연회객을 수용할 수 있다는 기록도 있다. 강연회나 연예 및 예술 공연은 대집회실에서 이뤄졌으며, 부산 시민들의 문화 활동의 거점이었다.
부대시설로는1층에 소집회실, 이발관, 일식당과 양식당, 오락실, 당구장, 창고 등이 설치되었고, 2층에는 대집회실과 끽연실, 3,4층에는 계단식 관람석, 지하층에는 창고가 마련되어 있었다. 공회당에 식당이 마련된 것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발관과 당구장, 끽연실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이 공간을 대민 문화공간이자 봉사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주민이란 이 공간을 주로 사용했던 내지인, 즉 일본인을 가리켰다.
부산공회당 공연의 중심은 활동사진, 즉 영화 상영이었다. 1928년 3월에 공회당이 완공되고 4월9일로 낙성식이 계획되었지만 부산공회당은 그보다 일주일 전인 4월2일부터 영화상영을 시작했다. 첫 상영작품은 미국의 종교영화 <신을 잊어버린 거리>와 <다비데 대왕>이었다. 이후에도 부산공회당에서는 <엠텐>, <지구의 진화>, <어미에게 맹세해서>, <골고다의 언덕>, <영웅의 흔적>, <폭군 네로>, <천국의 사람>, <여자는 마침내>, <킹 오브 킹>, <노를 잡는 손>, <맹수국 횡단>, <맹수국 세계횡단> 등의 서양영화가 주로 상영됐다.
이와 함께 부산공회당은 간간이 조선영화도 상영했는데, 김영환 감독의 <장화홍련전(1924)>, 이경손 감독의 <숙영낭자전(1928) 등이 대구 만경관의 주임변사 손병두의 해설로 상영됐고, 나운규의 <아리랑(1926), 이구영의 <아리랑후편(1930)> 등도 부산공회당에서 상영됐다.
그 외 연극, 무용, 음악 등의 다양한 문화 공연이 부산공회당에서 열렸는데, 특히 <국제관(1920-1928)>이 화재로 소실된 후에는 정상급 무용가들의 무용공연이 대부분 부산공회당에서 열렸다. 특히 1930년에는 배구자와 최승희, 이시이 바쿠가 모두 부산공회당에서 무용공연을 열었다. 1월11일에는 배구자가, 1930년 5월24일에는 최승희, 11월2일에는 이시이 바쿠를 부산공회당에서 공연회를 가졌다.
이후에도 1931년 2월17-18일과 1936년 4월1일에는 최승희가, 1932년 7월15일에는 이시이 바쿠가, 1934년 5월1일과 1936년7월8일에는 조택원이 <부산공회당>에서 공연을 가진 바 있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서는 군국주의 일제의 선전장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특히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1942년 이후에는 일본 육군성이 만든 <비상시 일본>, 부산 재향군인연합분회 후원으로 공개된 <대공군>, 독일대사관 특별 제공의 <독일, 폴란드 진격>, 조선 방공협회 경남도연합지부의 순회강연 및 영화가 주로 상영되었다.
즉, 일제 말기 부산공회당은 일제가 전쟁을 정당화하고 모든 부산 시민들의 황국신민화로 내몰아 가기 위한 문화적 기지로 악용되는 공간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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