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바쿠의 부산공연 레퍼토리에서 3번째 곡은 <꿈꾸다(夢みる유메미루)>였다. <이시이바쿠 팜플렛 제1집>에서는 <꿈꾸다>가 1922년(=다이쇼12년)에 베를린에서 창작된 작품이라고 밝혔고, <이시이바쿠 팜플렛 제4집>에서도 이 작품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Georg Strauss, 1864-1949)의 음악에 맞춰 안무된 작품이며, “우아한 처녀의 성스럽고 순수한 즐거움에의 욕구”에 대한 “차분하고 서정적인 고백”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부산공연의 1번째곡 <멜랑콜리>은 이시이 바쿠와 이시이 코나미의 이중무였고, 2번째곡 <법열>은 이시이 바쿠의 독무였던 반면, 3번째 곡인 <꿈꾸다>는 이시이 코나미의 독무로 발표되었다. 따라서 <꿈꾸다>는 여성적인 분위기의 무용작품이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꿈꾸다>는 1922년 베를린에서 창작되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정확히 어느 시기에 안무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이시이 바쿠가 마르세유에 도착한 것인 1922년 1월14일이었고, 파리를 경유해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는 1월말이었을 것이다. 겨울 동안 베를린 거주 일본인들이 모인 가운데 호텔 연회장에서 한차례 공연을 가졌던 것을 제외하면 다른 공연 활동은 없었다.
베를린에 도착한지 2개월쯤 지났을 때 한 미술 전람회에서 이시이 코나미가 <멜랑콜리>와 <비통한 그림자>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일본인 무용가>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1922년 4월24일, 브리츠너짤 콘서트홀에서 독일 첫 공연을 열어 <젊은 판과 님프>, <멜랑콜리>, <명암> 등의 창작품을 발표했다. 이 공연의 성공에 힘입어 독일의 여러지역에서 공연을 가졌고, 독일의 정상급 무용가 안나 파블로바와 함께 <힘과 미의 길(Wege zu Kraft und Schönheit, 1925)>이라는 문화영화에도 출연했다.
이시이 바쿠의 공연은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동유럽 지역으로 이어졌다가 9월초 베를린으로 돌아왔을 때 관동대지진 소식을 전해 들었다. 10월 초에야 아내 야에코의 편지를 통해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유럽 공연을 계속했다. 10월말부터 다시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스코틀랜드와 글래스고, 런던과 파리, 벨기에 등지에서 발표회를 가졌는데, 벨기에에서 뉴욕 공연 계약이 성사되어 10월말 파리와 르아브르를 경유해 뉴욕으로 향했다.
따라서 이시이 바쿠가 <꿈꾸다>를 창작할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1922년 1월말 베를린에 도착해서 4월24일 첫 베를린 공연을 가질 때까지의 비교적 한가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연이은 공연 때문에 차분하게 창작에 전념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갖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창작된 <꿈꾸다>는 4월24일의 베를린 공연 이후 유럽 각지에서도 발표되었을 것인데, 특히 <꿈꾸다>의 배경음악은 베를린에서 활동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악곡이었으므로 베를린의 관객들에게는 친근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꿈꾸다>의 배경음악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어떤 작품인지는 문헌에 밝혀져 있지 않다. 널리 알려진 슈트라우스의 작품 중 ‘꿈’을 소재로 한 것으로 대략 2개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슈트라우스의 작품번호 9번 피아노곡 <Stimmungsbilder(1884)>의 4번째 곡 <몽환(Trauimerei)>인데, 오늘날 널리 알려진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와는 다른 곡이다.
다른 하나는 세 개의 가곡으로 이루어진 작품번호 29번의 첫 번째 곡인 <황혼의 꿈(Traum durch Dämmerung(1895)>이다. <몽환>과 <황혼의 꿈>은 모두 2분30초 안팎의 짧은 곡이지만, 편곡을 통해 조정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꿈꾸다>의 영상이나 사진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음악과 동작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밝히기 어려운 상태이다.)
이시이 바쿠의 안무에 적합했을 음악은 <황혼의 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황혼의 꿈>은 오토 비어바움(Otto Bierbaum)이 지은 같은 제목의 시(1897)에 곡을 붙인 가곡으로, 노랫말은 대체로 “차분하고 서정적”일뿐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2절로 되어 있는 <황혼의 꿈>의 노랫말 1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두운 황혼의 너른 초원에/ 해는 저물고 별들이 떨고 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간다./ 검붉은 황혼 속, 초원의 저 높은 곳,/ 재스민 깊은 덤불 속에 사는 그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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