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3월28일 부산의 극장 <국제관>에서 열렸던 이시이바쿠무용단의 부산 제1회공연에서 발표된 4번째 작품은 <갇힌 사람(囚われたる人슈와레타루히토, 1922, 베를린)>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본어 제목도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전해졌다.
최초의 제목은 <슈와레타루히토(囚はれたる人)>였다. 이시이 바쿠의 첫 경성공연의 레퍼토리를 보도한 <조선신문(1926년 3월18일)>과 <경성일보(1926년 3월20일)>은 <슈와레타루히토(囚はれたる人)>라고 보도했고,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1936:39)>에서도 그와 똑같이 표기되었다.
그러나 다카시마 유사부로(高嶋雄三郎)의 평전 <최승희(1981(1959):18):>에서는 <슈와레타히토(囚われた人)>라고 표기했고, 미도리카와 준(綠川潤)의 평전 <무용가 이시이바쿠의 생애(2006:47-48)>에서도 그와 똑같이 표기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표기가 또 달라졌다. 카타오카 야스코(片岡康子)의 <이시이바쿠의 무용시와 전개(<무용학>, 1999년49호)>에서는 <슈와레타루히토(囚われたる人)>로 표기됐고, 아키타(秋田)고교동창생 시바야마 요시타카(柴山芳隆)의 글 <창작무용의 대천재 이시이 바쿠(2014:233쪽)>에서도 <슈와레타루히토(囚われたる人)>로 서술됐다. <일본양무사연표(2003:9쪽)>에도 <슈와레타루히토(囚われたる人)>로 정리된 것을 보면 이것이 최종판 제목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은 발표 당시 <슈와레타루히토(囚はれたる人)>였으나 <슈와레타히토(囚われた人)>를 거쳐 <슈와레타루히토(囚われたる人)>로 정착된 셈이다. 고어 일본어와 한국어에 정통한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고어 일본어가 현대화되면서 생긴 변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은 한국어 번역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최승일 편저의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1937:37)>에 실린 글 <출발전야>에서는 해당 작품을 <수인(囚人)>이라고 불렀다. 이를 따라 강이향(1993:40, 51-52)과 정수웅(2004:14, 173)과 강준식(2012:15)은 <수인(囚人)>으로 번역했고, 김경애, 김채현 이종호가 펴낸 <우리무용 100년(2001: 55-56)>과 고정일의 소설 <매혹된 혼(2011: 76)>에서도 <수인>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다른 번역도 있다. 정병호(1995:28)는 <사로잡힌 사람>, 김찬정(2003:32-33)은 <붙잡힌 사람들>이라고 번역했고, 조택원(2015:22-23)은 <사로잡힌 영혼>이라고 번역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서 통용되는 이 작품의 이름은 <수인(囚人)>이 가장 보편적이기는 하지만 <사로잡힌 사람>, <붙잡힌 사람들>, <사로잡힌 영혼>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본어 제목에 차이가 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표기법을 반영하거나, 현대문법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 제목들은 대체적인 뜻은 비슷하더라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시이 바쿠가 처음 이 작품을 안무할 때에는 나폴레옹이 헬레나 섬에 갇힌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섬에 갇힌 나폴레옹을 묘사하기 위해 ‘사로잡히다’나 ‘붙잡히다’는 말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섬에) 갇히다’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이시이 바쿠가 제목을 지으면서 ‘가둘 수(囚)’자를 사용한 것도 바로 그런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또한 조택원이 이 제목을 “사로잡힌 영혼”이라고 번역한 것도 일리가 있다. 비록 창작의 계기는 ‘헬레나 섬에 갇힌 나폴레옹’이었지만, 예술로서의 무용작품은 구체적 소재 상태를 벗어나 비유적인 뜻을 가지고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갇힌 나폴레옹의 처지를 묘사한 작품에 머무르지 않고, 심리적, 정신적 곤경에 갇힌 개인을 묘사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로잡힌 사람”은 곧 “사로잡힌 영혼”으로 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의 의도를 존중하고, 한자어보다는 고유어 번역이 바람직하다면, 이시이 바쿠의 <슈와레타루히토(囚われたる人)>는 <갇힌 사람>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시이 바쿠의 <슈와레타루히토>는 <갇힌 사람>으로 번역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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