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무용단의 첫 부산공연은 1926328-29일 오후6시에서 부산 국제관에서 열렸다. 325일 아침 이시이 무용단에 입단했던 최승희는 이날이 입단 3일째였으므로 실제 공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신입단원으로서 공연을 참관한 것은 326일의 대구공연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 공연에서 발표된 작품은 모두 12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26328일의 <부산일보>11개 작품이 2부로 나뉘어 공연되었다고 보도했다. 1부는 (1) 무용시 <멜랑콜리(メランコリイ)>, (2) 무용시소곡 <법열(法悅)>, (3) 무용시 <꿈꾸다(みる)>, (4) 극적무용 <갇힌 사람(はれたる)>, (5) 어린이무용(童踊) <완바쿠고조(わんばく小僧)>, (6) 무용시 <산을 오르다()> 등으로 구성되었고, 휴식(休憩) 후에 재개된 2부에서는 (7) 무용극 <명암(明闇)>, (8) 무용시 <솔베이지의 노래(ソルヴエーヂの)>, (9) 표현파풍의 무용시 <마스크(マスク)>, (10) 무용시 <고뇌하는 그림자(ましき)>, (11) 무용시극 <젊은 판과 님프(きパンとニンフ)>가 상연되었다.

 

 

이 목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관객의 앵콜 요청에 대비해 (12) <일본무용>이 한 작품 더 준비되었다. , <부산일보>의 같은 기사에 공연 종목은 유럽과 미국의 각국 무용은 물론 이시이 코나미의 특기인 야마다 고사쿠 씨 작곡의 <일본무용>을 번외로 더한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일본무용>에 대하여 자세하게 서술한 문헌은 없지만, 아마도 경성이나 부산 공연의 관객이 대부분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들에게 친숙한 일본식 작품을 레퍼토리에 추가한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무용>은 경성공연에서도 발표된 바 있었다. 따라서 이시이 무용단의 부산공연 레퍼토리는 321-23일의 경성공연 레퍼토리와 거의 같았다. 경성공연에서 발표된 11작품에다가 22번째 작품으로 <법열>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부산공연의 12개 발표작품은 대부분은 무용시로 분류되었다. 무용시는 야마다 코사쿠와 함께 이시이 바쿠가 개발한 형식과 내용의 창작 신무용으로, 일본 전통의 무용과는 전적으로 다른 형식의 신무용이었다. , 의상이나 음악, 동작 등의 거의 모든 면에서 서양식 무용을 도입하는 한편, 내용의 면에서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내용의 면에서 서사(敍事) 전달이 목적인 일본식 가부키나 서양식 고전발레와는 달리, 무용시는 서정(抒情)을 전달하는 데에 역점을 둔 무용작품이다.

 

 

부산공연의 12개 작품 중에서 무용시라고 소개된 작품이 5(<멜랑콜리>, <꿈꾸다>, <등산>, <솔베이지의 노래>, <고뇌의 그림자> )였고, ‘무용시 소곡으로 소개된 <명암>, ‘표현파 무용시라고 표현된 <마스크>, ‘무용시극으로 서술된 <젊은 판과 님프>를 합치면 모두 8개 작품이 무용시로 묘사되었다.

 

그밖에 <갇힌 사람>극적무용’, <완바쿠고조>어린이 무용’, <명암>무용극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들이 무용시와는 다른 무용종목으로 서술된 것은 그 작품들에서는 일정한 서사가 전개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용시로 서술된 <등산><솔베이지의 노래>, ‘무용시극으로 표현된 <젊은 판과 님프>에도 일정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무용시 작품과 다른 작품들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명백히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부산공연의 12개 작품을 발표한 무용수는 모두 4명이었다. 이시이 바쿠(石井漠)와 그의 처제 이시이 코나미(石井小浪), 이시이 바쿠의 여동생 이시이 에이코(石井榮子)와 아사쿠사 오페라 시절부터 이시이 바쿠와 함께 활동 했던 마츠우라 다비토(松浦旅人)였다.

 

<법열><갇힌 사람>은 이시이 바쿠의 독무, <꿈꾸다><솔베이지의 노래>, <마스크><고뇌하는 그림자><일본무용>은 이시이 코나미의 독무였고, <멜랑콜리><산을 오르다><젊은 판과 님프>는 이시이 바쿠와 이시이 코나미의 듀엣이었다. 마츠우라 다비토는 이시이 바쿠와 함께 <명암>, 이시이 에이코는 어린이 무용 <완바쿠고조>을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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