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111일 최승희와 안막은 세계 순회공연 첫 목적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19371229일 요코하마를 출발한 여객선 치치부마루(秩父丸)를 타고 2주일 항해 끝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한 것이다. 치치부마루 선장은 여객 명단을 미이민국에 제출했는데, 이 명단이 지금까지 미이민국 아카이브에 남아 있다.

 

한 면에 30명씩 8면으로 작성된 이 명단의 마지막 면(8)에 안막과 최승희의 이름이 있었다. 안막의 이름은 안 히츠쇼(An Hitsusho), 최승희의 이름은 사이 쇼키(Sai Shoki)라고 표기되어 있다. 안 히츠쇼는 안막의 본명 안필승(安弼承)의 한자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고, 사이 쇼키도 최승희(崔承喜)의 한자 이름의 일본식 발음을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두 사람의 인적 사항에는 결혼여부와 직업, 국적과 인종, 비자번호 및 발급일 등의 정보가 기입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국적은 일본(Japan)이지만 인종은 한국인(Korean)으로 되어 있었고, 최승희의 직업은 직업 무용가(Professional Dancer)”, 안막의 직업은 최승희의 매니저로 명시되었다. 또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도 부기되어 있었다.

 

 

이 명단에는 생년월일을 기입하는 난은 없었지만 나이를 기입하게 되어 있었다. 안막은 27, 최승희는 25세였다. 1910418일 출생의 안막이 1938111일 현재 27세인 것은 맞다. 당시 그는 만으로 27(+8개월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승희의 나이가 25세로 기록된 것은 의외였다. 최승희는 19111124일생이었으므로 19381월 현재 만나이26(+2), ‘연나이27, ‘세는 나이로는 28세여야 했다. 안막이 만나이를 기입했으므로 최승희의 나이도 만나이였을텐데, 어째서 26세가 아니라 25세라고 기재된 것일까?

 

이 명단이 승객명단이나 여권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라면 담당자의 착오나 실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출입국 기록 관리는 정확하고 엄격한 것이 보통이므로, 실수나 착오의 가능성은 배제하자. 그럼 최승희의 나이 25세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여권에 기입된 최승희의 생년월일이 19111124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최승희의 생일이 음력이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양력 날짜는 1912112일이다. 바로 이 날짜가 최승희의 여권과 입국신고서에 기재되었다면 최승희의 나이는 하루 차이로 만25(+355)가 된다.

 

안막의 경우는 어땠을까? 그의 생일 1910418일이 음력 날짜였다면 그의 양력 생일은 1910526일이 되어, 그의 나이는 여전히 만27(+7개월)이다. ,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 제출된 입국자 명단에 나타난 안막과 최승희의 나이는 모두 정확한 기록이 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두 사람의 생일이 음력 날짜였음을 전제로 한 것인데, 당시 이같은 상황은 빈번했다. 20세기 전반 조선인들은 음력을 주로 사용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양력만 사용하던 일본의 관행을 따라야했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곤 했다. 조선인들은 생일을 음력으로 기억하고 축하했지만, 그것을 관공서에 제출할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는 음력 생일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해 관공서 기록에 등재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공식 기록의 생년월일은 실제의 생일과 달라진다. 음력 생일의 양력 날짜가 매년 달라지기 때문이다. 둘째 방법은 음력 날짜를 그대로 관공서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면 관공서 기록의 생일과 실제 생일이 다른 것은 마찬가지더라도, 적어도 그 날짜를 매년 양력으로 환산해 실제 생일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최승희와 안막이 첫 번째 방식을 택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진짜 생일은 음력 19111124(최승희)1910418(안막)이었지만, 관공서의 기록에는 1912112(최승희)1910526(안필승)로 기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의 나이는 각각 만27세와 만25세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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