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의 학적부와 샌프란시스코 입국서류, 멕시코 입국서류 등을 조사한 결과,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승희의 생일 19111124일은 아마도 음력 날짜였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관공서 기록에는 음력 생일을 양력 생일인 것처럼 신고했지만, 실제 생일은 1912112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다른 자료를 보면 최승희 생일의 비밀은 약간 더 복잡해 진다. 예컨대 최승희와 안막은 1940425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앙(Ssan Juan)에서 여객선 코아모(Coamo)호를 타고 당일로 뉴욕항에 입항했는데, 이때도 입국신청서와 함께 승객명단이 제출되었다.

 

코아모호가 제출한 선객명단 4쪽에 안막과 최승희의 이름이 보이는데, 기재내용은 두 사람의 샌프란시스코 입항 때와 거의 비슷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출생지 정보였다.

 

 

안막과 최승희가 국적을 일본(Japan), 인종을 코리안(Korean)으로 기록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때와 같았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샌프란시스코 입항 시에는 인종이 일본인(Japanese)로 타이핑된 것을 연필로 지우고 그 위에 코리안이라고 수정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뉴욕 입항 때에는 처음부터 코리안으로 깨끗하게 타이핑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출생지 정보였다. 샌프란시스코 입항 때에는 두 사람의 출생지가 일본의 경성(Keijo, Japan)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뉴욕 입항 시에는 출생국이 코리아(Korea), 출생지는 조선(Chosen)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모두 타이핑된 기록이었다.

 

엄격히 말하면 조선과 코리아는 둘 다 나라 이름이다. 코리아는 대한제국(Korean Empire, 1897-1910)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조선(Chosen, 1392-1897)은 그 이전 518년동안 지속되었던 나라 이름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뉴욕 입국기록에 코리아와 조선을 나란히 기입했다.

 

 

안막의 경우에는 이같은 출생지 정보가 더 정확한 기록일 수 있다. 그의 출생일인 1910418일에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서 아직 독립국이었으므로, 출생지를 당시의 국호와 지명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강점 이후에 태어난 최승희까지 출생지를 조선, 코리아라고 쓴 것은 형식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기록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승희와 안막이 자신의 출생지를 한국과 조선이라고 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는 안막과 최승희가 외국 순회공연을 다니면서도 가는 곳마다 자신들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며 조선인이라는 점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일본 여권으로 여행하는 중이었으므로 공식기록이나 문헌에는 어쩔 수 없이 국적을 일본이라고 써야 했지만, 인종이나 출생지 정보 난에는 악착같이 조선과 한국이라는 이름을 남기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40425일의 뉴욕 입국자 명단에는 안막의 나이는 30, 최승희의 나이는 27세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안막의 정확한 생일은 추정하는 데에 특히 중요한 정보이다. 그의 생일은 일반적으로 1910418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 생일날짜가 양력이라면 그의 나이는 만30(+1주일)가 된다. 그러나 만일 그의 생일날짜가 음력이었다면 이를 양력으로 환산했을 경우 1910526일이 되며, 따라서 그의 나이는 만29(+11)가 된다. 그런데 이 입국기록에 만30세로 기입했으므로, 그의 생일날짜는 양력생일이었다는 점이 확실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최승희의 나이는 복잡해 진다. 그의 생일 19111124일이 양력날짜라면 1940425일 현재 만 28(+5개월)이다. 만일 생일날짜가 음력이라면 실제 생일은 1912112일이므로 그의 나이는 여전히 28(+3개월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승희는 이 서류에 자신의 나이를 27세로 기록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는 생일이나 나이를 기록으로 남길 때에는 그 정확성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 기록만은 예외로 두어야 하는 것일까? 최승희는 실수나 혹은 고의로 자신의 나이를 한 살 줄였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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