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0월10일 최승희와 안막은 멕시코에 입국했다. 유럽과 미국과 남미 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길에 멕시코를 경유했던 것이다.
최승희와 안막이 멕시코에 입국했을 때 작성한 입국서류 겸 신분증서에는 두 사람에 대한 인적 사항이 세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인적 사항은 <신체특징>과 <보충자료>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여기에 기재된 개인정보가 요즘 기준으로 거의 신상털이 수준이다.
우선 최승희의 <신체특징>을 보면 체형이 ‘마른 편(delgado)’이며 키는 ‘164센티미터’이고, 피부색깔은 ‘노랑(amarillo)’, 머리카락은 ‘짙은 밤색(castañoo obscuro)’이라고 기재되었다. 눈썹은 ‘반쯤 무성(semi pobladas)’하고 눈동자는 ‘커피색(cafés)’이며, 코는 ‘뭉툭납작(roma)’하고, 턱 끝은 ‘정상(normal)’이라고 되어 있다. 이어서 콧수염이 ‘없’고 턱수염도 ‘없’으며, 기타 다른 특징적인 사항도 ‘없다’고 되어 있다.
<보충정보>난에는 최승희의 결혼상태가 ‘기혼(casado)’, 직업은 ‘클래식 발레리나(bailarina clásica)’, 모국어는 ‘일본어(japonés)’, 제2외국어는 ‘영어(inglés)’라고 되어 있다. 현재의 국적은 ‘일본(japonesa)’, 출생지는 ‘일본의 경성(Keiyo, Japón)’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경성(京城)의 일본어 발음은 ‘케이조(Keijo)'인데 스페인으로 Keiyo라고 쓴 것이 생소했다. 하지만 이걸 스페인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하니까 ’케이조‘에 가깝게 발음했다. 한편, 최승희의 종교는 ‘불교도(budista)’, 인종은 ‘황인종(amarilla)’, 거주지는 ‘일본 도쿄(Tokio, Japón)'라고 되어 있었다. 이 입국서류는 신분증명서를 겸했기 때문에 이처럼 자세한 신체적 특징과 인적사항을 기입해 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서류의 <보충자료>난에는 최승희의 나이(28세)와 생년(1912년)도 기록되어 있다. 우선 최승희의 나이에는 별반 이상한 점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승희의 생일은 1911년 11월24일이므로, 이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은 1940년 10월10일 현재 만28세(+11달)였기 때문이다.
이상한 점은 최승희가 자신의 생년을 1912년이라고 적은 것이다. 생년만 기재하고 생월일을 생략한 것은 이 서류의 질문이 “태어난 해(ano en que nacio)”만 물었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왜 자신의 생년을 1911년이 아니라 1912년으로 기입했을까?
아무리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생년을 잊어버리거나 헷갈리는 경우는 없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 계산에 꼭 필요할 뿐 아니라,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출생연도가 학업성취도보다는 친구를 사귀는 데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승희의 숙명여학교 학적부에는 그의 생년이 1911년(=메이지44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멕시코 입국 기록에는 1912년이라고 기입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앞에서 보았듯이, 만일 학적부에 기재되었던 최승희의 생일 1911년 11월24일이 실제로는 음력 날짜였다면 최승희가 외국에서 생년을 1912년이라고 쓴 것이 설명될 수 있다. 음력 1911년 11월24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912년 1월12일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최승희의 나이는 여전히 만28세(+10달)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남편 안막도 같은 신분증서를 발급받았는데, 그의 나이는 30세, 생년월일은 1910년 4월18일로 기록되어 있었다. 안막이 자신의 생년월일을 다 기입한 까닭이 궁금해서 양식의 질문을 읽어보니, 두 사람이 사용한 양식의 포맷이 약간 달랐다. 최승희에게는 “태어난 해는(ano)?”만 물었는데, 안막에게는 “태어난 생년월일(fecha)?”을 물었던 것이다. 안막의 생일(1910년 4월18일)이 음력날짜이든, 양력날짜이든 그의 나이는 만30세(양력이라면 +6개월, 음력이라면 +약 5개월)가 된다.
여담이지만, 안막-최승희 결혼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의 키가 거의 같아 보이길래 안막이 단신인 줄 알았으나, 이 서류에 나타난 안막의 키는 173센티미터였다. 일제강점기 1910년생 조선인 남성의 평균 신장이 162센티미터였던 것을 고려하면 안막의 키는 평균보다 10센티미터 이상 더 컸을 뿐 아니라 아내 최승희보다도 9센티미터나 더 컸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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