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일의 제보와 테라다 토시오의 보도로 <경성일보>에서 시작된 ‘16세 최승희신화는, ‘16세 춘향이의 후광에 편승해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리 큰 영향력도 없었고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조선의 민족지들은 최승희의 초기 무용 활동에 침묵했었고, 최승희가 자서전을 통해 당시 나이를 ‘15로 바로잡은 후 ‘16세 최승희신화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16세 최승희신화는 조선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내 일본으로 옮겨졌고 오래 지속되었다. ‘16세 최승희신화를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이 조선의 일본어 신문 <경성일보>였지만, 같은 해 615일자 일본의 일간지 <도쿄니치니치(東京日日)신문>730일자 <야마토(やまと신문>에 의해 반복되었다.

 

192999일자 <도쿄니치니치신문>‘16세 최승희신화를 바탕으로 당시 최승희의 나이를 19세로 보도했고, 이는 일본의 대표적 문예지 <문예(文藝)> 193411월호에서도 반복되었다. 1935년에는 잡지 <실업의 세계(實業世界, 10월호)><부인구락부(婦人俱樂部, 3월호)‘16세 최승희신화를 이어갔고, 1937년에는 일본과 조선에서 널리 읽혔던 잡지 <조선행정(朝鮮行政, 4월호)>에서도 최승희가 16세에 무용을 시작했다는 서술이 계속되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일본의 여성잡지 <부인공론(婦人公論)> 19358월호가 무용 시작 당시 최승희의 나이가 14세였다고 서술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사 제목은 나의 자서전(自敍傳)”으로 최승희가 직접 집필해 기고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최승희는 당시 나는 (만으로) 14세였다고 밝혔는데도 일본 매체들은 “16세 최승희의 신화를 이어간 것이다.

 

또 다른 예외는 있었다면 최승희의 일본어 단행본 자서전 <나의 자서전(1936)>이었다. 도쿄에서 출판된 이 자서전에서 최승희는 무용 시작 당시 자신의 나이가 15세였다고 서술했다. <부인구락부>나의 자서전과 단행본 <나의 자서전>에서 같은 시기의 나이를 다르게 서술한 것은 만 나이(14)’연 나이(15)’의 차이였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문헌, 예컨대 경성에서 조선어로 출판된 <최승희 자서전(1937)>에 따르면 최승희는 자신이 19263월에 15세였다고 서술하면서, 이 나이가 조선식 세는 나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최승희 자신의 기록에 착오가 없다면, 최승희의 생일은 이미 알려진 것과는 다른 날짜였을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 이 점은 후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만 나이가 표준이었던 일본에서 사실과 다른 ‘16세 최승희신화가 이렇게 오래 계속된 것은 이상한 일이다. 최승희가 19264월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입단하면서 그의 생년월일을 제대로 보고했다면, 그것이 음력 19111124일이든 양력 1912112일이었든, 그의 나이는 ‘14로 수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6세 최승희신화가 계속되었다.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는 1940년에 발행한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에서 그 무렵의 최승희는 숙명여학교를 졸업했다고는 하나 아직 열여섯 살의 작은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고 기술했고 (<나의 얼굴>, 1940:30), 이는 1955년에 출판된 다른 자서전 <춤추는 바보(1955:116)>에서도 반복되었다.

 

다카시마 유자부로는 1959년에 최초의 최승희 단행본 평전을 발간하면서 이시이 바쿠의 회상을 그대로 인용했고(다카시마 유자부로, <최승희>, 1981(1959):19), 이는 재일동포 평전자 김찬정의 평전 <춤꾼 최승희(2003:34)>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최근에는 미도리카와 준의 평전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생애(2006:74)>에서도 서울공회당에서 공연할 때 최승희라는 여학교를 갓 졸업한 16세의 조선소녀가 입문했다고 서술했고, 이현준의 저서 <동양을 춤추는 최승희(2019:407)><경성일보>와 이시이 바쿠의 회상을 인용해, 최승희가 이시이 바쿠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가 16세였다고 서술했다.

 

일본에서는 최승희 본인이 자서전과 기고문을 통해 당시 나는 16세가 아니었다고 거듭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16세 최승희의 신화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왜 그랬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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