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을 시작했을 당시의 최승희 나이가 세는 나이15세였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오빠 최승일은 어째서 16세였다고 말했던 것일까? 최승희의 나이가 최초로 언론에 공개된 것은 1926325일의 <경성일보>였다.

 

조선 예찬자 이시이 바쿠씨가 이번 조선 방문을 기회로 조선 소녀를 제자로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일행이 경성 제3회 공연을 끝낸 23일 밤10시경 공회당의 이시이씨 일행의 대기실을 찾아와 제자가 되고 싶다고 부탁한 아름다운 조선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경성)부내 체부동 137번지 최준현씨의 영양(令孃) 최승희(崔承喜, 16)였다.”

 

<경성일보>는 최승희의 나이가 16세였던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 취재원은 최승희의 큰오빠 최승일이었다. 최승일은 1926321일 경성도서관에서 막 배달된 <경성일보>를 읽으면서 3면에 실린 이시이 인터뷰를 읽었다. 이 기사에는 이시이 바쿠가 “12-15세 사이의 조선인 여성 제자를 찾아내고 싶다고 말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의 여동생을 무용가로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최승일은 다음날 (아마도) 오전에 <경성일보>를 찾아가 학예부장 테라다 토시오를 만났다. 당시 최승일은 <경성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성일보를 방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시 <경성일보><경성방송국>은 같은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최승일이 테라다 토시오를 찾아가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같은 언론계 종사자일 뿐 아니라 당시 최승일은 일본대학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로서 소설 작품도 여러 편 발표한 청년 문사였기 때문이다. 문인과 학자와 예술가들을 잘 알고 있어야 했던 학예부장으로서 테라다 토시오는 이미 최승일과 아는 사이였을 가능성도 높다.

 

이 만남의 자리에서 최승일은 자신의 여동생이 이시이 바쿠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부탁했을 것이고, 테라다 토시오에게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이미 이시이 바쿠를 아는 사이였고, 이시이 바쿠의 첫 경성공연을 후원한 것이 바로 <경성일보> 학예부였기 때문이다. 최승일은 최승희를 이시이 바쿠에게 소개하기 위한 최적임자를 찾아갔던 것이다. 최승일의 요청에 따라 테라다 토시오는 이시이 바쿠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써주었다.

 

 

최승일이 최승희를 대동하고 이시이 바쿠를 찾아갔던 323일 밤, 테라다 토시오는 이시이 바쿠의 부탁으로 최승희를 직접 면접하기도 했다. 경성공회당 지하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두 남매와 자리를 마주한 테라다 토시오는 최승희의 가족과 성장배경에서 여학교를 졸업한 사정, 그리고 무용을 시작하려는 이유와 포부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면접을 했었고, 이시이 바쿠에게 긍정적인 보고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시이 바쿠가 최승희를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을 가장 먼저 안 것도 테라다 토시오였다. 그는 이시이 바쿠와 최승희의 소개자였을 뿐 아니라 <경성일보>의 학예부장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시이 바쿠가 조선인 제자를 받아들였다는 새로운 뉴스를 보도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그 기사가 325일자 <경성일보>에 실린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당시 최승희가 16세였다는 점을 처음 보도한 사람은 테라다 토시오였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최초의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오빠 최승일이었음에도 틀림없다. 그리고 ‘16세 최승희의 정보가 최승일로부터 테라다 토시오에게로 건너간 것은 소개장이 전달된 322일이거나 혹은 테라다 토시오가 이시이 바쿠를 대신해 최승희를 면접했던 323일 밤이었을 것이다.

 

최승희가 당시 조선식 세는 나이15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승일이 테라다 토시오에게 16세라고 전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 점은 아직도 의문이다. 특히 321일자 <경성일보>의 인터뷰 기사에 이시이 바쿠가 “12-15세 사이의 조선인 여성 제자를 찾아내고 싶다고 한 나이 조건을 읽고도 최승일이 최승희의 나이를 16세로 한 살 올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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