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16세 최승희> 신화가 지속되었던 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가 집필한 세 개의 글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그가 <문예(193411월호)>에 기고한 무희 최승희론(舞姬崔承喜論),” 둘째는 1925년에 발표한 실록 단편 <16세의 일기(十六歳日記)>, 셋째는 1926년에 발표한 그의 초기 대표작 <이즈의 무희(伊豆踊子)>.

 

<무희 최승희론(1934)>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최승희를 일본일(日本一) 무용가라고 선언했다. 일본 최고라는 말이다. 최승희는 3(1929-1933)의 경성 활동을 접고 스승 이시이 바쿠에게 돌아와 1934920일 도쿄에서 첫 공연을 가졌는데, 이 공연을 관람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곧바로 <무희 최승희론>을 집필해 <문예>지에 기고하면서 최승희를 극찬한 것이다.

 

 

<무희 최승희론>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6세 최승희>3번 언급했다. 같은 글에서 같은 표현을 여러 번 서술한 것은 강조의 뜻임에 틀림없지만, 3번이나 서술한 것은 지나쳐 보인다. 그가 무리해 가면서 최승희의 ‘16세 신화를 강조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대답의 일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소설 <16세의 일기(1925)>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자신이 16세 시절 그의 할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형상화된 소설이다. 이 작품은 19258-9월호 <문예춘추><17세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2회로 나뉘어 발표되었지만, 1927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당시 자신의 나이가 16세였음을 밝히면서 작품의 제목도 <16세의 일기>로 바꾸었다.

 

<16세의 일기>의 저술 배경을 생각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최승희를 만났을 때, 인생의 비슷한 시기에 최승희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아버지가 의사였던 부유한 집에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부모와 조부모, 여동생을 차례로 잃고 16세에 천애 고아가 되었지만 글쓰기에 매달려 험한 세상을 헤쳐 왔다.

 

최승희도 부유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나라도 망하고 집안도 몰락한 채 빈곤 속에서 여학교를 졸업했으나 진로를 찾지 못하던 중, 16세의 나이에 발견한 무용에 매달려 낯선 일본 땅으로 건너와 인생을 개척 중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즈의 무희(1926)>는 그 내용과 발표 시기의 양면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최승희의 삶과 춤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계기를 주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시즈오카현의 오지 이즈(伊豆) 지방에서 유랑하던 천민 무희에게 사랑을 느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무희에 대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우호적 정서는 일본 제국의 변방 조선에서 온 <반도의 무희> 최승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즈의 무희>가 발표된 것은 <문예시대(文藝時代)> 19261월호와 2월호였다. 이 작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초기 대표작으로 평론가와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1년만인 1927320일 단행본으로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작품집에는 <16세의 일기>도 수록되었다.

 

따라서 최승희가 처음 일본에 도착했던 19264월은 혜성처럼 등장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16세의 일기>가 일본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는 마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이 최승희의 등장을 예고하는 듯이 보였다.

 

 

또 최승희가 19333월 두 번째로 일본에 건너가 공연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보다 한 달 전인 19332, 쇼치쿠 영화사가 <이즈의 무희>를 영화화하여 개봉했다. 소설 <이즈의 무희>와 영화 <이즈의 무희>는 두 번에 걸친 최승희의 일본 활동 시작 시기와 일치했던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최승희가 어린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했고, 최승희의 공연 활동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발표가 시기적으로 일치했던 것은 아마도 우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중첩된 우연을 통해서나마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최승희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특별한 관심과 작품들이 <16세 최승희> 신화를 이어받아 영속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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