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1922529, 4)>에 따르면 숙명여학생들은 (5)26일 상오1135분 도착 열차로 래인(來仁=인천에 오다)”했다가 하오615분 인천역발() 열차로 귀교했다. 인천역에 도착해 대열을 정비할 시간을 30분씩으로 잡는다면, 실제 수학여행은 12시에 시작되어 545분경에 끝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시간이 채 못되는 수학여행이었던 것이다.

 

인천 도착이 1135분이었으니 인원점검하고 나면 바로 점심시간이었을 것이다. 식사시간을 45분으로 잡았다면 여행지 방문시간은 오후1시부터 6시까지 약 5시간뿐이었다. 숙명여학생들은 인천에서 어떤 곳을 방문하고 견학했던 것일까?

<동아일보(1922529, 4)>는 숙명여학생들이 시가(市街)와 동,서공원, 그리고 관측소와 축항(築港) 및 기타 여러 곳을 순람(巡覽=차례로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당시에도 인천역을 나서면 바로 중심가였고 인천신사가 있던 동공원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시가 방문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5시간 동안 동공원과 서공원, 관측소와 축항을 돌아보고, 그밖에도 기타 여러 곳을 차례로 관람했다니 일정이 빡빡한 수학여행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동공원(東公園, 현재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자리, 중구 인중로 146)>은 일제강점기에 인천신사가 있던 공원이다. 대한제국 시기에 일본조계지의 동편 끝에 마련되었고 그때는 <일본공원>이라고 불렸고, 궁정(宮町)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궁정공원>이라고도 했다. 바닷가 절벽 위의 높은 곳에 마련된 신사 인근이 공원으로 꾸며져 식물원과 놀이시설이 있었다.

 

<서공원(西公園)>은 지금의 <자유공원>이다. 대한제국 시기에 청국과 일본 조계지 북쪽 응봉산(鷹峰山) 기슭에 조성된 공원이다. <각국공원> 혹은 <만국공원>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그 지역이 청국과 일본을 제외한 기타 각국의 조계지였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고 1914년 조계지를 철폐하면서 <일본공원><동공원>으로 <각국공원><서공원>으로 개칭됐다.

 

관측소(현재, 중구 전동 25-1)기후를 관찰하고 측정하는 기상대를 말한다. 19044월 일제는 인천에 관측소를 신설해 러일전쟁을 필두로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하는 데에 필요한 기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응봉산 정상에 69평 규모의 목조 2층 건물로 지어진 관측소의 주변에는 기후를 관찰하고 측정하기 위한 각종 기기를 구비했고, 그 결과를 매일 발표했다.

 

 

축항(築港, 중구 내항로 67)은 축조된 항구라는 뜻이다. 1883년 개항 시기 인천에는 항구시설이 없었다. 일제는 1914년 갑문과 잔교를 만들어 대규모 선박들이 접안할 수 있게 했다. 관측소와 함께 인천 축항은 일제가 건설한 신식문물로서 학생들의 견학거리로 추천됐을 것이다.

 

<동아일보>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조선일보(1924426)>가 보도한 이화학당의 인천 수학여행에는 검역소(중구 항동71-17)”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으로 반출되던 한국소를 검사하던 이출우검역소를 가리킨다. 통감부 시기부터 패망까지 일제는 약 150만 마리의 한우와 6백만 마리분의 소가죽을 반출했는데, 검역소는 그 한우와 가죽을 검사하던 곳이다.

 

 

그런데 5시간의 도보 일정으로 동공원과 서공원, 관측소와 축항과 검역소 방문이 가능했을지가 의문이었다. 현주소 기준으로 동선을 측정해 보니, 인천역에서 자유공원 입구까지 5백미터(도보로 10), 자유공원 입구에서 관측소까지 5백미터(오르막길 15), 관측소에서 검역소까지 3.3킬로미터(54), 검역소에서 축항까지 1.7킬로미터(27), 축항에서 동공원까지 3.2킬로미터(51)였고, 모든 방문을 마치고 인천역으로 돌아가는데 1.5킬로미터(26)였다. 10.7킬로미터였고 도보로 178, 즉 걷는 데에만 약 3시간이 걸렸을 거리이다.

 

5군데의 방문지를 돌아보는 시간은 2시간밖에 할당되지 않았을 테니 한 방문지에 25분 이상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 인천 시가지와 서공원의 양식 건물들은 걸어지나가면서 구경할 수 있었겠지만, 관측소나 검역소, 축항의 갑문이나 신사에서는 현장 관계자로부터 충분한 설명이나마 제대로 듣기 어려웠을 시간이다. 따라서 숙명여학교의 인천 수학여행은 3시간 걸으면서 2시간 구경해야 했던 분주하고 빡빡한 여행이었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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